책 만권을 읽으면..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마크네포/흐름출판

다림영 2014. 5. 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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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안전한 제 2의 자기

인간이 가진 것들 중에서 우정만큼 열정적으로 산을 응시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시몬 베유Simone Well-

 

운 좋게도 나는 친구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며 살아왔다. 삶이 사막과도 같을 때 친구들은 내게 오아시스가 되어주었고, 가슴에 불이 붙었을 때는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시원한 강물이 되어 주었다. 출혈 때문에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때 한 친구는 수건으로 내 머리를 닦아주고, 다른 친구는 우리 집 문간에 모자를 벗고 서서 이렇게 말해줬다.

 

원한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

또 다른 친구들은 내가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물심양면 도와주는가 하면, 내가 진리의 조각들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이런 우정에 나는 결국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신의 말씀을 기다리며 고지대의 바람 속에서 외로이 잠을 청해보기도 했고,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산꼭대기에서 홀로 노래 부르는 것과 나를 물가로 인도해준 친구들 속에서 속삭이는 것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정직한 친구는 우리의 영혼에 이르는 문과 같고, 따뜻한 친구는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화초와 같다. 독일어로 우정이라는 말의 어원이 아주 안전한 자리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안전함이 우리를 신에게로 인도한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Cicero친구는 제 2의 자기라고 했고, 생 마틴 Sant Martin신은 친구들을 통해 내게 사랑을 베풀어주신다.”고 했다.

 

 

 

푸른불꽃

버펄로는 버펄로글스를 먹고산다.

버펄로 그래스는 버펄로들의 배설물을 비료 삼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흙과 하나가 되기 때문에 가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피트David Peat-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행히도 뿌리를 튼튼하게 키우고 언제나 겸허하게 만들어주는 순환은, 우리의 배설물을 먹고 자란 것들을 먹고 우리의 인간성을 소화하고 처리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된다. 버펄로처럼 우리도 자신의 부서진 흔적들에서 돋아난 것들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우리가 짓밟고 버린 것들이 우리의 양식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다. 예외는 없다.

 

 

댄서의 다리 위로 파이프가 떨어지면 댄서는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반면, 파이프를 떨어뜨린 일꾼은 자원해서 불구의 노련한 기술자들과 함께 일한다. 친한 친구가 구근 모양의 종양을 발견하면 그의 튤립들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의 간호사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이렇듯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상황이 흩어졌다가 이어진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화하며, 무너지고 실수해도 무너진 것 이상의 존재로 신비롭게 거듭난다. 실제로 우리는 실수가 경작해낸 토양에서 성장한다. 우리가 놓지 않으려 했던 것들도 이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손을 떠나간다.

 

 

나도 무너지거나 실패한 적이 아주 많다. 덕분에 나의 정체성은 마치 양파처럼 생겨나기가 무섭게 벗겨졌다. 하지만 이 덕분에 내게 허락된 몫보다 더욱 다양한 삶을 살고, 늙음과 젊음을 동시에 느끼며, 단지 바람을 쐬고 싶다는 이유로 눈물 흘릴 줄 아는 느닷없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지금까지 괴로워했던 모든 것들의 반대편에 서서, 새들의 활기찬 노랫소리부터 졸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에 갇혀버린 평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소중하고 신선하게 느낀다. 이제는 어떤 바람이 불든지 맨몸으로 맞이하고 싶다.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두려움마저도 삶의 리듬의 일부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뱀이 허물을 벗듯 , 아무껍질이 따닥 소리를 내며 떨어지듯 인간의 가슴도 허물을 벗는다는 것을. 강제로 열릴 때는 가슴이 눈물을 흘리지만, 사랑으로 열릴 때는 가슴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는 것을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의 양식이나 다름없는 그 뜨거운 진리를 가로막는 것이 무엇이건, 우리의 마음을 속여 탁 트인 곳에서도 숨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건 고갱이만 빼고 온갖 곳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건, 이실체 없는 몽롱한 상태가 우리를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듦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싹을 틔우게 하는 모든 것, 무와 고통과 지푸라기로 안식처를 짓게 만드는 모든 것, 우리 마음에 불을 지펴 다시 처음의 시간을 갈구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바로 푸른불꽃이라는 것도 이 불꽃으로 인해 지구가 끊임없이 태양을 향해 돈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삶의 경이를 지속하는 능력

하나의 원자에서 지구의 모든 원소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의 한 가지 움직임에서 존재의 모든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에서 무한한 대양의 모든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한 가지 모습에서 삶의 모든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칼릴 지브란-

 

인간은 가차없이 순환 속에 내던져져 있다. 우리의 마음은 거북이 같은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만들어내지만, 이 껍질은 영혼을 억누른다. 결국 우리는 껍질에서 벗어날 때까지 계속해서 껍질을 깨버릴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껍질을 만들었다가는 부시고, 얇게 다시 만들었다가 는 부셔버린다. 이렇게 만들고 부수는 사이에서만 우리의 마음은 완전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갇혔다 해방되는 사이에서만 사랑이 우리를 관통한다.

 

그러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이런 순환에 공모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이끼를 자라게 하고 은은 변색되며, 개념이 커지면 마음은 무감각해진다. 폭풍우는 이끼를 제거하고, 변색된 부분은 무언가에 긁히면 없어지며, 위기가 닥치면 마음의 표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시간의 축적과 침식 속에서 우리는 변화한다. 하지만 똑같다. 바람에 모래가 둔덕을 이루면, 조수가 이 둔덕을 무너뜨린다. 마찬가지로 생의 초반기가 우리를 가득 채우면, 후반기에는 소리 없이 부드럽게 침수된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막과 이후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침식을 견뎌낼 뿐이다.

 

물론 막과 침식의 춤은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춤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 이해 , 존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흐려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하는가? 얼마나 쉽게 영혼의 만성적인 건망증에 빠져 관찰과 분석 속으로 표류해 들어가 참여하고 경험하기를 멈추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믿기지 않게 삶의 그림자에만 익숙해진 모습으로 삶의 느낌도 망각하고 있다가 눈 뜨는가?

 

우리는 삶의 그림자들을 당혹스런 모양과 미묘한 색조까지 하나하나 아주 분명하게 본다. 하지만 삶을 느끼지는 못한다. 대지가 나무들을 키우듯 마음은 이렇게 생각과 말들을 키운다. 나무들이 너무 많으면 더 이상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과 생각들을 잘라내야 한다. 물론 도끼는 침묵이 될 것이다.

 

실제로 , 생기는 경이를 지속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신을 진정으로 드러내는 순간을 늘리는 것, 즉 대지의 모든 원소와 대양의 모든 비밀이 우리 안에서 기다리는 삶의 모습을 움직일 때까지 고요하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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