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4월 14일
一事一言
“식사나 합니다”의 깊은 뜻
언젠가 아내는 아침식사로 선식이라는 가루 음식을 내게 권했다. 전혀 내키지 않았지만, 아내의 반강제와 선색을 더 좋다고 하는 아이들의 권유에 못 이겨 마치 쓴탕약을 마시듯 온갖 인상을 다 쓰며 몇 번 먹어보앗다. 도무지 식사를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우유에 탄 걸쭉한 가루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그 니글니글한 기분도 싫었지만, 무엇보다도 한 컵의 가루음식을 들이켜는 것으로 ‘아침식사 끝’이라는 게 허전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나는 선식을 포기하고 다시 이전처럼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 영양가 높은 선식을 마다하고 아침마다 밥을 찾는 것은 순전히 새로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생각해보면 , 내가 선식을 마다한 것은 단지 선식이라는 가루 음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 변화를 싫어하는 나의 성격탓만은 아니었다. “절대로 아침밥을 준비하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선식은 밥보다 영양분이 고루 섞여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권한다.”는 아내의 진실을 의심해서도 아니다.
식사가 너무 쉽게, 순식간에 끝나는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식사는 단지 영양을 섭취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누구에게 또는 누가 나에게 “함께 식사나 합시다”할 때, “함께 영양이나 섭취합시다”라는 말이 아닌 것처럼, 가족이 함게 식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식사는 하나가 되는 자리이다. ‘밥그릇 따로, 먹는 사람 따로’이지만, 한자리에서 함께 먹으면 쉽게 하나가 된다. 그럴 수 있으려면, 적어도 따끈한 밥이 식을 정도의 시간 동안만이라도 함게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거룡. 선문대 통합의학대학원장.인도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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