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월 9일
만물상
결혼을 지탱하는 힘
30대 부부는 마주 보고 자고, 40대 부부는 천장을 보고 잔다. 50대 부부는 등돌리고 자고, 60대 부부는 각방을 쓴다. 그리고 70대는 서로 어디서 자는지 모른다는 우스개가 있다.
“결혼은 단테 ‘신곡’ 과 반대”라는 말도 있다. 천국에서 시작해 연옥으로 갔다가 지옥에서 끝난다는 얘기다. “결혼은 열병(熱病)과 반대”라고도 한다. 신열로 시작해 오한으로 끝나니까. 살아갈수록 식는 부부의 애정을 빗댄 말들이다.
서양부부의 애정곡선은 U자를 그린다. 신혼 때 높았다가 중년에 떨어지고 노년에 다시 솟는다. 우리네 부부들은 L자형이 많다고 한다. 줄곧 내리막 끝에 바닥을 치고는 그저 부부 사이만 이어간다.
수명이 늘면서 결혼 50년은 예삿일이 된 지금 부부는 긴 세월을 무엇으로 사는가.인구보건복지협회가 기혼남녀 1000명에게 ‘작년 한 해를 버틴 힘’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절반이 ‘내 아이들’을 꼽았고 ‘남편. 아내’(31%),‘인내심(10%)이 뒤를 이었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나이별로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20대는 남편.아내(41%)를 앞세웠고 50,60대에선 인내심(40%)이 자식(13%) 남편.아내(8%)를 압도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꼽은 아내도 5%를 넘었다. “3주 서로 연구하고, 3개월 사랑하고, 3년 싸움하고, 30년을 참고 견딘다”는 말이 딱 맞는다. ‘로또에 당첨되면 혼자만 알고 사라질 기회를 엿본다’도 22%,60대에선 38%나 됐다.
일본에 1999년 남편들이 만든 전국정주(亭主)관백(關白)협회가 있다. 정주는 남편, 관백은 왕 다음가는 권력자로 ‘정주관백’은 폭군남편을 가리킨다. 간판과 달리 회원들은 “아내를 관백처럼 받들자”고 한다.
‘아내를 이기려 하지말고, 이기지도 말고, 이기고 싶지도 않다’는 3원칙을 내세운다. 결혼 3년 넘어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초단)부터 ’사랑한다고 쑥스럽지 않게 말하는 사람‘ (10단)’까지 단증도 발급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조사에서 남편과 아내들은 ‘올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대화와 소통’(26%)을 꼽았다. 이 비율이 60대에선 절반을 넘었다. 일본 전정협처럼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건 아무래도 남편 몫이다.
팔만대장경에 있다는 ‘아내는 남편의 누님’이라는 말처럼, 월탄 박종화는 늙은 아내를 일러 ‘된장찌개를 내 밥상 위에 끓여 놓아주는, 하나 남은 옛 친구’라고 했다. 미운정 고운 정이 손때로 오른 한 쌍 질그릇처럼 오순도순 늙어갈 일이다. -오태진 수석 논설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