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우리에게 한가함을 許하라

다림영 2014. 1. 2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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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23

一事一言

 

우리에게 한가함을 許하라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몇 달 만지작거리다 만 것이 관련 경험의 시작과 끝이었다. 블로그는 말할 것도 없고 페이스북도, 트위터도 하지 않는다. 내가 무슨 디지털 시대의 러다이트(Luddite)이거나 빅브러더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음모론자여서가 아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나의 이유는 현실적이다. 오프라인에서 형성한 관계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는 주제에 감당하지 못할 일은 벌이지 말자는 게 하나고, 생각보다 말이 앞서는 성격상 사회관계적 자살 행위를 하게 될 확률이 높으므로 알아서 피하자는게 또 하나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의 성실한 구성원이 될 자신이 없다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만큼 게으르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고 말하곤 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 관리에까지 정성을 쏟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얼핏 보기에 페이스북은 여행 사진과, 음식사진 그리고 여행에서 먹은 음식사진이 대부분이고, 트위터는 홍보성 멘션과 홍보성멘션을 성토하는 멘션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 같은데, 어느 쪽이든 바쁜 시간을 쪼객며 매달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서 아예 바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도록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우리는 바쁜 세상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한가한 시간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탓하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속에서조차 성실한 구성원으로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바쁘게 돌아간다고 생각할 뿐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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