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신언불미信言不美

다림영 2014. 1. 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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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1

정민의 世說新語

 

신언불미信言不美 

 

화려한 말잔치로 한 해가 다 갔다. 저마다 제가 옳고 남이 틀렸다고 하니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갈수록 어렵다.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맞고 저 말 들으면 그게 더 그럴법하다. 한쪽이 옳으면 다른 편은 그른 것일 터, 하지만 세상에 전부 옳고 완전히 그른 일이 없다 보니 옳고 그름이 겹쳐지는 대목에서 자꾸 착시 현상이 발생해 생기는 일이다. 맥락을 외면한 채 아전인수격으로 저 보고 싶은 쪽만 바라보고 높이는 목청은 이제 조금 가라앉혀야 하겠다.

 

도덕경81장에서 노자가 말했다. 믿음성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말을 잘 못하고, 말 잘하는 자는 착하지가 않다. 지혜로운 자는 해박하지 않은데, 해박한 자는 지혜롭지 못하다. 성인은 쌓아두는 법이 없다. 남을 위했는데 자기가 더 갖게 되고, 남에게 주었건만 자기는 더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하지 해되는 법이 없고, 성인의 도는 위할 뿐 다투지 않는다.(한자 생략)”

 

 

참 간명한 대비다. 그럴사한 말은 무책임하다. 번드르르한 말에는 속임수가 깃들어 있다. 떠벌릴수록 속빈강정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자꾸 그럴사한 말에 솔깃하고 번드르르한 말에 귀가 쫑긋해져서 우리는 진실을 못 보고 종종 햇심을 놓친다. 말이 많아지는 것은 상대를 현혹시키기 위해서다. 진리는 단순한 데 있다. 그 때문에 진실은 자주 불편하다. 자기 판단이 없이는 우왕좌왕 떠드는 대로 몰려다니게 된다. 이로움이 있을뿐 해됨이 없는 하늘의 도리, 서로를 위하기만 하고 다툴 줄 모르는 성인의 마음은 난무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앞에 바보 취급 당하기가 딱 좋다.

 

갑오년 새해가 밝았다. 경장(更張)의 계기는 말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하면 어떨까? 달콤하고 그럴싸한 말 말고 투박하고 질박한 말, 빙빙 돌려 얘기하지 않고 찔러서 하는 얘기, 곁가지를 걷어내서 허심탄회해지는 그런 대화법이 더 멀리 퍼져갔으면 싶다. 믿음성 있는 말은 번드르르하지 않다. 번드르르한 말은 믿음성이 없다.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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