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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에는 실정이 있고 진실이 있지만 하는 일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은 마음으로 전할 수는 있으되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는 없다. 그것을 터득할 수는 있으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뿌리가 되고 스스로 근본이 되는 것이어서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의 옛날부터 엄연히 존재하였다.
귀신들을 신령케 하고 황제들을 신령케 하였으며, 하늘을 생성하고 땅을 생성시켰다. 태극보다도 위에 있지만 높은 듯 하지 않고, 땅 속깊은 곳의 아래에 있지만 깊은 듯하지 않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으면서도 오래 된 것 같지 않고, 태고보다 오래 되었지만 늙은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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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관한 모든 것, 가난하고 부한 것, 귀하고 천한 것 등은 모두가 운명에 의한 것이며, 이 운명의 주체는 하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며, 자연의 필연적이고 맹목적인 힘인 것이다. 그것을 맹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차별하고 선택하는 것 같은 작용을 전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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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고요한 것은 고요한 것이 훌륭하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 아니다. 만물에 그의 마음을 굽힐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고요한 것이다. 물이 고요하면 수염과 눈썹도 밝게 비추며, 완전한 수평이 되어 위대한 목수라 하더라도 그것을 법도로 삼는다. 물이 고요해도 밝은데, 하물며 정신이나 성인의 마음이 고요할 때야 어떠하겠는가? 그것은 하늘과 땅을 비추는 거울이요, 만물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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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덕에 있어 편벽된 것이며,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것은 도에 있어서 그릇된 것이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마음에 있어서 올바름을 잃은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근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덕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한결같음으로써 변하지 않는 것은 고요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는 것은 텅 빔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사물과 교섭이 없는 것은 담담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며 ,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 없는 것은 순수함에 있어서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수고롭히고 쉬지 않으면 지치게 되며, 정신을 사용하고 멈추는 일이 없으면 수고롭게 된다. 수고로우면 마르게 된다.” 고 하는 것이다. 물의 본성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으면 맑고, 움직이지 않으면 평평하다. 그러나 꽉 막히고 흐르지 않으면 역시 맑아질 수가 없다. 이것은 자연의 덕과 비슷한 형상이다. 그러므로 “순수히 잡된 것이 섞이지 않고, 고요하고 한결같아 변하지 않으며, 담담히 무위하고, 움직이면 자연의 운행을 따른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정신을 보양하는 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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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적인 학문으로 본성을 닦아 그의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고 통속적인 생각으로 욕망을 다스려 밝은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몽매한 백성’이라고 말한다.
옛날의 도를 다스리던 사람들은 고요함으로 지혜를 길렀다. 나면서부터 지혜로 행동하는 일이 없었으니, 그를 두고 지혜로써 고요함을 기르는 사람이라 말한다. 지혜와 고요함이 서로를 길러 줌으로써 조화와 이치가 그의 본성에 생겨나는 것이다.
덕이란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도란 이치에 맞는 것이다. 덕이 모든 것을 용납하는 것이 어짊이다. 도가 모두 이치에 들어맞는 것이 의로움이다.의로움이 밝음으로써 사물과 친군하게 되는 것이 충실함이다. 속마음이 순수하고 충실하여 진실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음악이다. 자기 모습과 몸을 행하는 대로 맡겨 두어도 자연의 질서에 따르게 되는 것이 예의이다. 예의와 음악이 편벽되게 행하여지면 곧 천하가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올바로 행동하면서 자기의 덕을 지니고 있으면 덕은 가려지지 않는 법이다. 덕이 가려지면 물건은 반드시 그의 본성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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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의 이른바 뜻을 얻었던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은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뜻일 따름이다. 지금의 이른바 뜻을 얻었다는 사람들이란 높은 벼슬을 얻은 것을 두고 말한다. 높은 벼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자기의 본성이나 운명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물건이 갑자기 와서 자기에게 붙은 것과 같다. 자기에게 붙은 것이지만 그것이 오는 것은 막을 수도 없고, 그것이 떠나는 것을 붙들어 둘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벼슬을 얻었다 하여 뜻을 방자히 지니지 말고, 곤궁하다 해도 세속을 좇지 않아야 한다. 그 즐거움은 그러나 저러나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근심이 없을 따름인 것이다. 지금 자기에게 붙었던 것이 떨어져 나가면 즐겁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이로써 본다면 비록 즐긴다 하더라도 전혀 마음은 본성을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건에 의하여 자기를 잃게 되고, 세속 때문에 본성을 잃는 것’을 두고서 근본과 말단을 ‘거꾸로 하는 백성들’이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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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의 신이 말하였다.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건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물건 자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귀하고 남은 천한 것이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귀하고 천한 것은 자기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 주는 것이다. 상대적인 관심에서 볼 때에 그것에 비하여 크다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크지 않은 것이 없게 되며, 그것에 비하여 작다는 입장에서 보면 만물에는 작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하늘과 땅도 큰 것과 비교할 적에는 피() 한 알정도로 생각될 수 있고 터럭 끝도 작은 것과 비교할 적에는 큰 산 정도로 생각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은 상대적인 구별에서 그렇게 됨을 알 것이다. 쓰임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 쓰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쓰임이 없는 것이란 없게되며, 그 쓰임이 없다고 부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은 쓰임이 있는 것이란 없게된다.
동쪽과 서쪽은 서로 반대가 되면서도 서로 어느 한 편이 없어서도 안 되는 것임을 안다면 곧 쓰임의 규정도 상대적인 것임을 알 것이다. 취향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이 그러함을 인정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옳지 않은 것이란 없게 된다. 그것이 그름을 비난하는 입장에서 말하면 만물에는 그릇되지 않은 것이 없게된다. 요임금이나 걸왕이 모두 스스로는 시인하면서도 서로는 비난하였다는 것을 안다면 취향이란 것도 상대적으로 결정됨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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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는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것일까? 자기 몸을 편히 해 주는 길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몸담아야 하는가? 무엇을 따라 나아가야 하고 무엇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가? 무엇을 즐거워하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존중하는 것은 부귀와 장수와 명예이다.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것은 몸의 안락과 맛잇는 음식과 아름다운 옷과 좋은 빛깔과 음악 같은 것들이다. 세상에서 싫어하는 것은 가난하고 천한 것과 일찍 죽는 것과 비난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괴롭게 여기는 것은 몸이 편안치 않은 것과 입으로 맛잇는 것을 먹지 못하는 것과 몸에 아름다운 옷을 걸치지 못하는 것과 눈으로 좋은 빛깔을 보지 못하는 것과 귀로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들을 얻지 못하면 곧 크게 근심하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은 그의 육신만을 위하는 것이니 어리석은 일이다.
부자란 사람들은 자신을 괴롭히면서 애써서 일하여 많은 재물을 쌓아 놓고도 다 쓰지 못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을 위하려는 것이니 목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신분이 귀한 사람들이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하여 일의 잘 되고 잘못 된 것을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육신을 위하려는 것이니 목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사람이 태어난 다는 것은 근심과 더불어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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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나온 아이가 귀대를 하는데 그 손에 들려 보내려고 몇 가지의 과일을 말렸다. 시어머니께서 바나나 말린 것 하나를 잡수신다며 드셨는데 손바닥에 든 것을 보여주신다. 틀니를 하려고 잠깐 씌워 놓은 어떤 것이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러며 하신다는 말씀이 이젠 이런 것 못먹겠다 하시는 것이다. 그 말씀 속에 알 수 없는 서글픔이 왈칵 전해졌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나 요즘 치아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젊었을 때부터 관리를 잘 했다면 나이가 들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고 노환으로 오는 것을 어이 막을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매일 그 작은 먹을꺼리 때문에 그늘이 내려앉는 모습을 보며 인간으로서 맛난 것을 들 때의 기쁨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인스턴트 식품에서부터 맵고 짠 모든 것을 물리며 좋은식습관과 소식에 길을 들이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난 지금 갑자기 겨울추위속에서 붕어빵을 들고 지나는 젊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의 급격한 파도가 일고 있다. 그 작은 것 하나에 온통 정신이 몰려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세상소용돌이로부터 멀리 있겠다고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속에서 별스럽지 않은 먹을 것 하나 때문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께서 세 살 아이처럼 먹는 것을 탐할 때 나는 마땅치 않은 마음으로 언제나 바라보았다.
어느새 하루가 또 저물고 있다. 아이가 동료들과 맛나게 나눠 먹을 환한 풍경을 떠올려 보면서 참으로 우습지만 누군가 내게 들리면 멀리있는 포장마차를 운운하면서 붕어빵 두어개만 사다 달라고 얘기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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