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모던수필/향연/

다림영 2013. 10.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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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먹는 쥐/ 김광섭

 

나는 쥐의 얼굴을 또렷하게 본 일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쥐라는 것이 살 때나 죽을 때나 허리가 꼬부라진 것밖에 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위대한 화폭에 나타난 쥐를 보더라도 고금을 물론하고 허리가 물론하고 허리가 꼿꼿하고 그야말로 체격 좋은 쥐란 거의 없다. 하나의 위대한 동물로 태어나서 그 생탄生誕의 역사가 유구하면서 나는 그에게 어디에 발전된 특점特點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직 환경이 있을 뿐이다. 이 환경에 대한 초연한 각성과 자극과 노력이 없이는 그에게는 정신이라는 아름다운 신비가 생기지 못하리라!

 

한 마리의 개를 앞에 놓고 우리는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 꼬리 치는 양을 정情으로 대할 수 있다.

한 마리의 토끼를 보면 우리는 비록 허리가 짤막하고 꼬부라졌다 하더라도 점잖은 그 길쭉한 귀와 그 털을 만져 주고 싶다.

한 마리의 양! 그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유한 성격으로 인간에 끼친 바 많은가.

하나의 소름을 느낄지라도 뱀은 불행한 인류의 행복된 순간의 첫 혈頁을 만든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땅을 기는 달팽이, 거기에는 인내의 본체가 구현된 것 같고 하늘을 나는 솔개, 거기에는 또한 숭고한 정신이 그 기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주위에서 손쉽게 주워 댈 수 있는 동물들 가운데 쥐의 참여를 인정해 놓고 보면 그 수염은 말석末席을 벗어날 위력을 갖추지 못한다.

 

그의 찬연餐宴은 항상 잔식물殘食物에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것을 먹으며 그 수염이 있음은 또한 만족이라는 안도의 심경이 비료가 되는 듯도 하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에 비하면 식 위주로 만족하는 양반과 같다. 그러나 잊어서 안 될 것은 그에게는 그 식도가 곡고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만일 기아가 닥쳐든다 하더라도 쥐의 기사는 멀리 인간 기사후에 속한다. 그런 까닭으로인지 식에 복하고 한쪽에서 굶어도 먹을 것이 풍요한 사람은 대게는 쥐 상으로 보인다. 만일 이 새해가 쥐의 해라면 지극히 다복한 해일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밤중이다. 나는 날이 밝은 뒤에도 밤중이거니 하는 때가 가끔 있지만 확실히 이웃집 시계가 세 시를 쳤다. 이 시각에 깰 이유가 이 원고에 있음은 아니로되 깨고 보니 천장에서 쥐가 맹렬한 복싱이나 하는 듯했다. 셋집이라 엷은 그 봉싱대가 파괴되지나 않을까 기우杞憂하면서.

하 자다가 배가 꾸물꾸물하기에 보니 쥐가 배 위에서 죽었겠지....”

 

하던 어제 스토브 옆에서 들은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나의 머리 위에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와세다 재학 때의 일이 연상을 통하여 눈앞에 찾아 떠온다. 생각하니 바로 세모거나 연초의 일이다. 밤을 자고 나니 이군의 책상위에 꽃이 다 없어졌다. 밤새 쥐가 달려들어 다 먹어버린 것이 주위의 사정으로 판명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쥐가 꽃을 먹는다!’

이렇게 부자연한 마음으로써 웃고 말았다.

부잣집에 오는 쥐와 가난한 문학 학도의 방에 오는 쥐는 미각이 좀 다른갑다.’

하고....

고요한 밤 마지막까지 꽃을 먹은 쥐가 나의 시선에서 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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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쥐가 꽃도 먹는다는 사실을..

몇날며칠을 쥐 때문에 시달렸다.

어젠 급기야 나는 두 손을 들고 더 이상 그와 실갱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

틈이 좀 난 곳에 큰 벽돌 한 장을 얹어두고 나니 얼씬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필을 읽고 보니  그 쥐는 나의 꽃밭에 기거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 쥐가 꽃을 먹다니.. 똑똑 부러져 있는 꽃을 보고 나는 얼마나 애통해 했는가.

친구에게 얘기하면 이 말을 친구는 믿을 것인가.

꽃을 먹는 쥐라니... 향기롭다.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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