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 양식이다. 태초에 침묵이 있었다. 언젠가 명동에 있는 카톨릭 여학생관에서 무슨 강론이 잇엇는데, 그때 나는 가벼운 기분으로 이렇게 ㅁ라한 적이 있다. 내가 만일 성서를 편찬했다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기 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노라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그러자 어떤 남자 신도가 불쑥 일어나더니 그게 아니라며 태초에 말씀이 계시기 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노라고 기록했을 것이라고, 그러자 어떤 남자 신도가 불쑥 일어나더니 그게 아니라며 태초에 말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혼이 울릴 수 있는 말씀이라면 무거운 침묵이 배경이 되어야 한다. 침묵은 모든 삼라만상의 기본적인 존재양식이다. 나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그 배경엔 늘 침묵이 있다. 침묵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서 움이 트고 잎이 피고 꽃과 열매가 맺는다.
우리는 안에 있는 것을 늘 밖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침묵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에 고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내 안에 잠재되어 있다.
따라서 밖으로 쳐다보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안으로 들여다보는 데서 침묵을 캐낼 수가 있다. 침묵은 자기 정화의 또는 자기 질서의 지름길이다. 온갖 소음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지키려면 침묵의 의미를 몸에 익혀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잡다한 지식의 홍수에서 어떻게 놓여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의 홍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또 하나는 넘쳐나는 물량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 그 다음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정보와 지식은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선별하지 않으면 정보와 지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살지 못하고 다른 의지에 의해 삶이 끌려다닌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또는 여행길에서도 우리들은 조용히 자기 내면을 관찰할 기회가 별로 없다. 이것은 외부적인 소음 때문이다. 마침내는 거기에 중독된 나머지 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요구하게 된다.
내가 산중에 있다가 밖에 나올 때 문득 느끼는 것이 저질 문화의 홍수다. 저질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문화의 홍수에 우리가 휘말려 있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된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이것은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저질 문화의 홍수에 맹종할 게 아니라 분명한 자기 질서를 갖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진정한 인간이 되려면 지금까지 받아들여온 것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참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만을 가려서 받아들여야 한다.
잡다한 정보와 지식의 소음에서 해방되려면 우선 침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침묵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는 그런 복잡한 얽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내 자신이 침묵의 세계에 들어가 봐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적으로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는가. 의미 없는 말을 하룻동안 수없이 남발하고 있다. 친구를 만나서 얘기할 때 유익한 말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말은 가능한 한 적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충분할 때는 두 마디를 피해야 한다. 인류 역사상 사람답게 살다간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침묵과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을 우리들 자신마저 소음이 되어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 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그 내부는 비어 있다.
말이 적은사람,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초면이든 구면이든 말이 많은 사람한테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나도 이제 가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말수가 적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내가 내 마음을 활짝 열어보이고 싶어진다.
사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불교경전은 말하고 있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귄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전부 말해 버리면 말의 의미가, 말의 무게가 여물지 않는다.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오늘날 인간의 말이 소음으로 전락한 것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 소음과 다름없이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말을 안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똑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산에는 꽃이피네/법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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