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김나영의 `아버지의 팔자` 감상 / 권순진

다림영 2013. 7. 2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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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팔자/김나영-

 

 

‘야들아, 나는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다’ 던 아버지

그 좋은 팔자 2년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네

온 식구들 불러 모아 놓고

사돈에 육촌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큰 홀 빌려서 사흘 밤낮 잔치를 베푸시네

배포 큰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새 옷도 한 벌씩 척척 사주고

아버지도 백만 원이 넘는 비싼 옷으로 쫘-악 빼 입으시고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리무진까지 타시고

온 식구들 대절버스에 줄줄이 태우고

수원 찍고 이천으로 꽃구경까지 시켜주시네

간도 크셔라 우리 아버지

이천 만원이 넘는 큰돈을

삼일 만에 펑펑 다 써버리고

우리들 볼 낯이 없었던지

돌아오시질 않네

잔치는 끝났는데…

아마도 우리 아버지 팔자 다시 고쳤나 보네

 

 

<감상>

 

 

 우리나라의 100세 이상 고령자가 최근 5년 만에 갑절 이상 늘어나 2천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통계청 조사결과를 본 일이

있다. 특히 전북 장수군은 2만 명도 채 안 되는 인구 가운데 백세 이상이 열 명이나 된다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장수 비결로는 가장 먼저 절제된 식생활 습관을 꼽았고, 다음으로 낙천적인 성격과 규칙적인 생활 등을 내세웠다. 한마디

로 요약하면 욕망을 줄여 안빈낙도하는 삶이 장수에는 최고라는 말씀이다.

 

 ‘가만히 앉아서 먹고 자고 테레비나 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팔자가 상팔자’란 생각을 가진 ‘아버지’ 역시 낙천적인

성격만큼은 분명하신 듯한데, 왜 그렇게 서둘러 가셨을까. 시에서 보여준 정보만으론 연세는 물론 그 어느 사정도 소상히

파악되지 않지만 정황으로 보아 외로움은 좀 타신 것 같다. 사실 나이 들면 외로움과 쓸쓸함만큼 고약한 건 없다. 고독을

잘근잘근 씹기엔 치아가 너무 허술하고 세상은 빡세게 돌아가고 있다. 

 

 외로움이 치매와 혈압 등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즉 외로움이 인체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린

다는 뜻이다. 특히 타인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느낄 때의 뇌의 반응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육체적인 고통과 버금간다

고 한다. 외로움이 질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그동안 꽤 보고되었다. 중년 이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렇지 않은 사람 보다 혈압도 높고 심혈관 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고 한다. 

 

 ‘그 좋은 팔자 2년도 지긋지긋했던 모양’이라는 화자의 진술로 미뤄봐서, ‘아버지’는 그리 쪼달라지 않는 경제 형편임에

도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오히려 두렵게 생각하고 계셨던 분 같다. '테레비'만 갖고는 그 외로움이 극복되지 않아, 외로

워서 ‘사돈에 육촌아재까지 불러놓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 친구들까지 죄다 불러놓고’ 잔치 한판 거시게 벌였던 것이다.

골골하고 외롭게 너무 오래 사느니 차라리 팔자를 고쳐 살고 싶으셨던 게다. 

 

-권순진(시인)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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