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강경호의 `건망증` 감상 / 박현수

다림영 2013. 4. 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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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강경호-

 

 

바람이 불자 상수리나무가

아나 먹어라

툭, 상수리 몇 개를 떨어뜨리자

다람쥐 한 마리

한참 동안 맛있게 식사하고

몇 개를 입에 물고 언덕 위로 올라가더니

나뭇잎 속에 재빨리 숨긴다

눈이 내린 날

먹을 것이 궁한 다람쥐

언덕 위 눈발을 뒤지다 그만둔다

저토록 앙증맞은 것이

숨겨놓은 식량을 찾지 못하다니

쯧쯧, 어린것이 벌써 건망증이라니,

사람인 나도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는데,

책을 읽다가 책장을 넘기면

앞장이 생각나지 않고

아내는 벌써 솥을 몇 번이나 태워먹고

팔순의 어머니는 손에 들고도 찾으신다

사람의 건망증은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언덕을 푸르게 한다

 

 

<감상>

 

 

   삶의 풍경을 거울을 보듯 담담하게 그려내는 강경호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다람쥐와 사람의 건망증을 비교하고

있네요. 사람의 건망증은 제 자신을 망치기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세상을 푸르게 만든다는 겁니다.

 

   건망증은 이제껏 지고 온 삶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책도 내려놓고 솥도 내려놓고 정말 잊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라는 신호겠지요. 그것으로 제 삶이라도 푸르게 만들어보라는, 다람쥐의 저 푸르른 건망증

을 배워보라는 뜻이겠지요.

 

-박현수(시인, 경북대 교수)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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