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건망증/강경호-
바람이 불자 상수리나무가
아나 먹어라
툭, 상수리 몇 개를 떨어뜨리자
다람쥐 한 마리
한참 동안 맛있게 식사하고
몇 개를 입에 물고 언덕 위로 올라가더니
나뭇잎 속에 재빨리 숨긴다
눈이 내린 날
먹을 것이 궁한 다람쥐
언덕 위 눈발을 뒤지다 그만둔다
저토록 앙증맞은 것이
숨겨놓은 식량을 찾지 못하다니
쯧쯧, 어린것이 벌써 건망증이라니,
사람인 나도
나이 들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는데,
책을 읽다가 책장을 넘기면
앞장이 생각나지 않고
아내는 벌써 솥을 몇 번이나 태워먹고
팔순의 어머니는 손에 들고도 찾으신다
사람의 건망증은
사람 구실을 못하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언덕을 푸르게 한다
<감상>
삶의 풍경을 거울을 보듯 담담하게 그려내는 강경호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다람쥐와 사람의 건망증을 비교하고
있네요. 사람의 건망증은 제 자신을 망치기만 하는데, 다람쥐의 건망증은 세상을 푸르게 만든다는 겁니다.
건망증은 이제껏 지고 온 삶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라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책도 내려놓고 솥도 내려놓고 정말 잊어
버린 것이 무엇인지 더듬어보라는 신호겠지요. 그것으로 제 삶이라도 푸르게 만들어보라는, 다람쥐의 저 푸르른 건망증
을 배워보라는 뜻이겠지요.
-박현수(시인, 경북대 교수)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메모 :
반응형
'애송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흰 구름의 마음/이생진 (0) | 2013.05.16 |
---|---|
사청사우 乍晴乍雨/김시습 (0) | 2013.05.02 |
[스크랩] 송유미의 `가지치기` 감상 / 서대선 (0) | 2013.04.11 |
[스크랩] 바다의 오후/이생진 (0) | 2013.04.09 |
[스크랩]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이기철 (0) | 2013.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