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다림영 2013. 2. 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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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이성복의 序詩를 들여다본다.

어쩌면 시인은 이리 익숙한 단어로 서늘한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인지

시인이란 사람들은 참으로 신기하기만하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오늘의 시

딱딱한 책을 뒤적이다 피로한 눈을 위해 쉬어 가는데

이리 마음에 스며들 수가 없다.

 

창밖에는 찬바람이 몹시 부나보다. 엄마 따라 나온 아이의 볼이 사과처럼 붉다.

 

.

95세 할머니가 시계건전지를 바꾸러 오셨다.

눈물이 자꾸 새어나오시는지 눈가를 훔치시고

가게 손님이 없어 내게 말동무를 해 주신다며

하느님이 이런 지혜를 주셨다고 웃으시며 이야기하신다.

 

작년엔 김치가 먹고 싶어 배추 한통을 사서 김치를 담그었노라 하셨는데

작년엔 저녁에 누울 때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침이면 또 살아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한해가 지나고 건강히 교회에 다녀오려면 시계가 잘 돌아가야 한다며 내게 오셨다.

할머니의 주름진 모습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었는데 이런...카메라밧데리가 출장가시고 없는 것... 이리 안타까울수가 없다.

 

할머니가 내가 보던 신문을 잠시 잡더니 아주 작은 글씨도 보이노라며 내게 자랑을 하셨는데...

단지 관절이 조금 좋지 않고 귀가 잘 안 들리는데 관절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 한 가지는 귀가 잘 안 들리게 해 주신 것이라고 하신다.

요는 며느리가 할머니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을 하나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

그런 말은 안 듣는 것이 좋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하냐고 하신다.

텔레비전뉴스 같은 것이야 밑에 글씨가 나오니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어쩌느냐고 인사도 해 주시고

방긋 웃으시며 나가시는 95세 할머니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워 천천히 걸어 나가시는 모습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년에도 꼭 만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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