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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 시
숲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1945~)
나뭇잎이 우수수 져 내린 산길로 들어선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나의 소리가, 내가 움직이는 소리가 내 귀를 청명하게 한다. 숲의 구도 청명하리라.
내가 이렇게 나뭇잎을 밟으면 그대로 ‘네가 나뭇잎을 밟았노라’소리 내고, 내가 미끄러져 넘어지면 가장 정직하게 좀 더 소란한 소리로서 내가 미끄러져 넘어졌음의 소리를 되돌려 준다. 가끔 삭정이가 꺾어지기도 하며 나의 긴장을 요구하니 숲길과 나는 저절로 근원적 모국어의 대화를 하는 셈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 그 종(種)과 속(屬)이 달라도 저희끼리 그런 대화를 나누리라. 그리하여 이상적인 균형을 맞추어 이처럼 화평한 숲을 이루었으니 ‘숲’이라는 모자이크야말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구현해야 할 마음의 지도겠다.
그러나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나는 내가 너무 크고 그대는 그대가 너무 크니 온 땅을 다 ‘내 것’으로 만 하고 싶은 까닭이 아니겠는가. 한가지 나무로만 된 숲을 나는 보지 못햇으니 내가 너로부터 온 것임을, 그래서 숲임을! 나는 몇 번씩 넘어지며 산길을 갔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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