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밥해주러 간다/유안진

다림영 2012. 11. 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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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러 간다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하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유안진(1941~)


소에게 여물을 줄 때 그 손은 거룩하다. 소의 여물 먹는 소리는 지상 최고의 음악이다. 종일 굶은 개에게 저녁밥을 줄 때 동쪽 하늘의 별은 거룩한 빛으로 바뀐다. 젖 뗀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밥풀 묻은 볼따귀와 포도송이 같은 눈빛은 마음으로 스며들어 이내 어찌 할 수 없는 커다란 저수지를 만들어 놓는다.


저 세상 태초로부터 흘러온 물길, 다시 저 태허로 흘러가 닿는 생명의 물길! '모성'이라거니 '사랑'ㅓ이라거니 '아가페'라거니 하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겹겹의 감격이 거기에는 있다. '자식 밥 먹이는 일'이 이 모든 일의 우선이며 많은 사람이 자식 밥 먹이기 위해 길 위에 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말도 실은 없다. 못나고 부족한 자식은 더 마음이 쓰인다. 실제로 못나고 부족한 것이 아니지만 세상의 해괴한 잣대는 그렇게 서열 지어 묶어놓는다. '취직 못한 막내 눔' 이 점점 많아진다. 서둘러 적색 신호등을 건너는 할머니도 많아진다.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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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매일 아이들 먹일것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밖에서  아무거나 먹을까봐, 먹고 탈이 날까봐, 내 손으로 이것 저것 정성스레 먹을 것을 만들어 놓고 나온다. 아이들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런지 모르겠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는 내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다. 내 몸이 고달프니 그러지 말라한다.그러며 다 알아서 먹고 살기 마련이며 그렇다고 죽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먹는 식사와 아무렇게나 먹어치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떤 스님이 하신 말씀을 냉장고에 붙여놓았는데 그것은 ... '먹는 식사가 그 사람을 만든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분명 정신과 육체가 모두 해당되는 것이리라. 


비가 내리는 날, 발목을 다쳐 시장도 들리지 못하는 나는 친정엄마에게 이곳 시장에서 몇가지 장보기를 부탁했다. 내일은 아이들이 모두 쉬는 날이므로 맛난 것을 가득 만들어 놓아야 하므로.... 

할머니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내가 만들어 먹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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