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모순

다림영 2012. 7. 1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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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자기 아들과 노새를 끌고 시장에 가고 있었다. 그때 그것을 본 지나가던 사람이 참 바보 같은 사람도 다 있군. 노새를 멀쩡히 두공 걸어가다니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자신이 노새를 타고 아들에게 고삐를 잡게 하였다. 잠시 그렇게 가는데 이번에는 논두렁에서 김을 매던 농부가 한마디 했다.

 

참으로 부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일세. 그래. 제 자식놈을 걷게하고 자기만 편하자고 혼자 노새를 타고 가다니....”

 

아버지는 곧 노새에서 내려 아들을 태웠다. 그렇게 얼마를 가는데 이번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있던 동네 노인들이 혀를 끌끌찼다.

아무리 세상이 위아래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어린 것이 노새 등에 버젓이 타고 나이 든 아비가 그 고삐를 잡다니, ....”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는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노새를 타고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쟁기질을 하고 있던 다른 농부가 그것을 보더니 또 한마디 하는 것이다.

저런,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기로서니 저렇게 혹사시킬 수가 있나, 참으로 인정머리 없는 것들이로군...”

 

모순은 그렇게 시작되었나 보다.

이것이 더 좋은 것이고 이것이 더 나쁜 것이라는 계산으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삶이 방황하고 흔들리며 불안했던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관념의 저울대를 가지고 이리저리 재고 계산하며 살아왔던 까닭에....

 

내 마음에 맞는 것이 어디 다 옳은 것이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어디 다 나쁜 것이었던가? 더 좋은 것 나쁜 것, 잘난 것 못난 것, 진짜와 가짜, 이런 부질없는 가름이 있었기에 착한아이 나쁜아이도 생기고 우등생 열들생도 생겼을 것이다.

 

농부의 잘못 또한 거기에 있었으리라. 애당초 처음 자신들의 빈 마음처럼 둘이 함께 고삐를 잡고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부자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갔으면 될 터인데, 세상에서 속삭여대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이 흔들리고 하여 결국 아무것도 옳은 것이 없는 흔들리는 배가 되어버리고 만 것.

 

 

부질없는 관념에서 나오는 계산의 저울대를 꺾어버리자.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자.

그동안 쌓았던 관념의 찌거기들을 다 토해버리고 그동안 가리웠던 모든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나 텅 빈 내가 되어보자.

 

그렇게 빈 마음, 빈 자아가 되어 새로이, 이 밤도 세상의 수많은 선남선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저 대자대비 관음보살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뒤주속의 성자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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