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막소금의 귀환

다림영 2011. 9. 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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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9/19 一事一言

 

어릴 땐 천일염이 귀한줄 몰랐다. 집집마다 광에 흔하게 쌓여 있던 물건이었고, 값조차 싼 싸구려여서 조심성 없는 발길에 이리저리 치이던 천덕꾸러기였다. 나도 천일염을 몇번 밟고 지나간 기억이 있다. 하여, 그것은 이름조차 막소금이었다.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땐 가공염이나 제재염을 썼다. 천일염이 필요하면 꺼림칙한 느낌 때문에 볶아서 사용했다. 가공염은 느끼했고 볶은 소금은 맛이 썼지만 여전히 천일염은 부엌 안으로 들어오질 못했다. 그저 먹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밑간과 겉간의 차이를 아는 데 5년이 걸렸고, 주부 경력 7년 차가 되면서 국물 요리엔 천일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명 맛집들은 천일염과 가공염을 7대 3의 비율로 섞어 쓴다는 것도 이젠 안다. 그게 국물맛을 내는 황금비율이기 때문이다.

 

2007년 세계 소금 박람회가 있었다. 천일염이 그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품질이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게랑드 소금은 나트륨농도가 87.57%였고,천일염은 81.75%였다. 반면 미네랄은 천일염이 3.4배나 많았다. 맛도 좋았다. 천일염은 칼칼하고 단맛이 도는 반면 게랑드소금은 뒷맛이 둔하고 탁했다.

 

이제 천일염은 양념 종지에 버젓이 담겨 부엌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귀물인 줄 아는데 꼬박 7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해서, 난 가끔 주위를 한 번씩 둘러본다. 흔해 빠지고 언제나 옆에 있어서 그 진가를 알지 못했던, 막소금처럼 함부로 취급한 사람이나 물건은 혹 없었는지.

 

<이현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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