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월 12일
정독精讀과 다독多讀중 어느 것이 독서의 바른 태도일까? 정독할 책은 정독하고, 다독할 책은 다독하면 된다. 정독해야 할 책을 대충 읽어 넘어가면 읽으나 마나다. 그저 쉽게 읽어도 괜찮을 소설책을 심각하게 밑줄 그으며 읽는 것도 곤란하다. 꼼곰히 읽어야 할 책은 새겨서 되풀이 해 읽고, 견문을 넓히기에 좋은 책은 스치듯 읽어 치워도 문제될 게 없다.
한편 다독도 다독 나름이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다독은 이 책 저 책 많이 읽는 다독이 아니라, 한 번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다독이었다. "논너" "맹자" 같은 기본 경전은 몇 백번 몇 천번씩 숫자를 세어가며 읽었다. 김득신 같은 사람은 '백이열전'을 1억 1만2000천번이나 읽어, 당호를 아예 억만재億萬齋라고 지었을 정도다. 이쯤 되면 다독은 정독의 다른 말이 된다.
소는 여물을 대충 씹어 삼킨 뒤, 여러 차례 되새김질을 해서 완전히 소화시킨다. 우작牛嚼, 즉 소가 되새김질하듯 읽는 독서법은 한번 읽어 전체 얼개를 파악한 후, 다시 하나하나 차근차근 음미하며 읽는 정독이다. 처음엔 잘 몰라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의미가 선명해진다. 인내심이 요구되나 보람은 크다.
고래는 바닷속에서 그 큰 입을 쩍 벌려서 물고기와 새우를 바닷물과 함게 삼켜 버린다. 입을 닫으면 바닷물은 이빨 사이로 빠져나가고 물고기와 새우는 체에 걸러져 뱃속으로 꿀꺽 들어간다. 소화는 시키고 말고 할 게 없다. 씹지도 않은채 그대로 뱃속으로 직행한다. 그것도 부지런히해야 그 큰 위장을 간신히 채운다. 경단鯨呑, 즉 고래의 삼키는 독서법은 강렬한 탐구욕에 불타는 젊은이의 독서법이다. 그들은 고래가 닥치는 대로 먹이를 먹어치우듯 폭넓은 지식을 갈구한다. 자칫 욕심만 사나운 수박 겉핥기가 되는 것이 문제다.
씹지 않고 삼키기만 계속 하면 결국 소화불량에 걸린다. 되새김질만 하고 있으면 편협해지기 쉽다. 소의 되새김질과 고래의 한입에 삼키기는 서로 보완의 관계다. 책 읽기만 그렇겠는가?주식투자도 다를 게 없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마냥 궁리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 없이 덮어놓고 저지르기만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독과 다독, 궁리와 결단의 줄타기가 바로 인생이다.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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