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초(日日草)/ 호시노 토미히로(星野富弘)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또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 시화집 《내 꿈은 언젠가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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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노는 손이 아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체육교사가 된지 2개월 만에 학생들 앞에서 공중제비 시범을 보이다가 그만 매트에 머리부터 떨어지는 큰 사고를 당했다. 그때 경추가 완전히 손상되어 전신마비가 되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목 위쪽뿐이었다. 스스로 식사도 용변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예기치 못한 이 엄청난 불행에 모든 의욕을 잃고 절망의 나락에 빠졌다.
죽음조차 제 의지로 선택할 수 없이 천정을 보며 멍하니 누워 지내던 중 문득 편지에 답장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 붓을 물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붓끝으로 비뚤거리는 한 음절의 글자를 썼다. 입에 물고 있던 가제는 침으로 흠뻑 젖었고, 너무 힘을 주어 잇몸에서 난 약간의 피도 가제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기뻐서 마치 무슨 스포츠 신기록이라도 세운 양 스스로에게 놀랐다.
그는 기계체조의 아름다운 고난도 기술도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호시노는 한 줄의 선, 하나의 점을 위해 매일 매일 피나는 연습을 거듭했다. 그 결과로 가슴속 시를 글로 옮기고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드디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스스로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이 재생과 부활의 바탕이 되었고 평범한 하루가 모여 위대한 생을 이룬 것이다.
평범한 것 같은 우리의 삶도 돌이켜보면 몇 차례의 불행, 그리고 고비가 있었다. 어느 땐 한 달에도 몇 번씩 희로애락에 휘청거릴 때도 있다. 그러나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환희도, 땅이 꺼질 것 같은 슬픈 일들도 대개는 지나가는 것들이었다. 언제나 곁에 있는 것은 잔잔한 일상들이고, 그 일상의 평범함이 삶을 밀고 가는 힘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적인 일은 일상의 힘을 토대로 한다.
아무리 뜨거운 사랑도 무소불위의 권력도 밥 먹는 일과 칫솔질, 화장실에 걸터앉는 시간의 총합보다 더 많이 행사할 수는 없다. 기분이 좋을 때야 무슨 일이든 못할까만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닌데도 일상을 유지하는 게 힘이다. 때로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의 희망과 극복조차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일이어야 한다.
사상 최악의 지진에다 방사능 공포까지 겹쳐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에게서 그 평상심과 일상의 힘을 엿볼 수 있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갈라진 도로에서 신호를 지키고, 슬픔을 절제하며 이웃을 배려하는 일상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은 섬뜩하리만큼 냉정적인 에너지다. 혼란을 틈타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도, 완장을 차고 설쳐대는 사람도, 정부의 일부 실책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누굴 원망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ACT4
Blueprints Of The Heart / Davi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