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삶에 저항하지 말라

다림영 2011. 2. 17. 12:17
728x90
반응형

모란이 무너져 내리고 난 빈 자리에 작약이 피고 있다. 선연한 꽃 빛깔과 그 자태가 사람의 발길을 자꾸 가까이 끌어당긴다. 5년 전 고랭지에 피어 있는 작약을 보고 가까이 두고 싶어 농원에서 백 그루를 사다 심었었다. 그런데 그해에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웬 검은 손이 와서 모조리 캐가고 말았다. 그때 남은 이삭이 움을 틔워 요즘 꽃을 피운 것이다. 기특하고 고맙다.

 

이른 아침 채소밭 머리에서 밤새 자라 오른 상추며 아욱, 오이넝쿨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산천의 정기가 내 몸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 아욱은 10여 년 전 씨를 구해다 한번 뿌리고 나서는 해마다 거저 따서 먹는다. 지난해에 떨어진 씨앗에서 움이 터 내 일손을 덜어 준것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이 놀라울 뿐이다.

 

요즘 나는 방 안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채소밭이나 뜰에 나가 어정거리는 시간을 즐기고 있다. 방 안에서는 방석 위에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는 일이 고작인데, 뜰에 나가 있으면 생기에 넘치는 살아 있는 것들을 대할 수 있어 무료하지 않고 그 기운으로 나를 채울 수 있다.

 

올여름에는 거의 책을 보지 않는다. 눈이 번적 뜨이는 그런 책을 가가이 접할 수도 없지만 비슷비슷한 소리에 진력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돋보기를 맞추어 쓴 지가 10년도 훨씬 넘기 때문에 눈이 쉬이 피로해져서 책을 멀리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종이에 활자로 박힌 남의 글 보다는 나 자신을 읽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해마다 이맘때면 저녁 어스름을 타고 쏙독새가 찾아와 오두막 위를 선회하면서 '쏙독쏙독 쏙독쏙독....' 내 벗이 되어 주었는데 2,3년 전부터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토끼도 해가 기울면 오두막 가까이 내려와 뜰에서 어정거리거나 채소밭에 들어가 요기를 하고 갔는데 요 몇 해 동안은 자취를 볼 수 없다. 겨울철에 산수국 대궁을 뜯어먹느라 그 아래 배설물을 남기고 간 자취를 보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밀렵꾼들 때문에 몹시 조심하는 것 같다.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뜻밖에 묵은 일기장이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충 훑어부면서 내 삶의 자취가 빛바랜 사진첩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995년 6월 17일<토요일>, 남불 생 레미에서 쓴 대목, 여행 중에 가지고 간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집>에서 인용한 글이 실려 있었다.

 

홀로 명상하라.

모든 것을 놓아 버려라.

이미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말라.

굳이 기억하려 하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 되리라.

그리고 그것에 매달리면 다시는 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끝없는 고독, 저 사랑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토록 순결하고 그토록 새롭게 명상하라.

 

저항하지 말라.

그 어떤 것에도 자벽을 쌓아두지 말라.

온갖 사소한 충동, 강제와 욕구로부터

그리고 그 자질구레한 모든 갈등과 위선으로부터

진정으로 온전히 자유로워지거라.

그러면 팔을 활짝 벌리고

삶의 한복판을 뚜벅뚜벅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

 

책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법정

 

---

 

어떤 일이든 일어났다면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다. 그것은 내가 받아들일때 미풍으로 잦아든다. 토네이도로 다가왔다가 강풍으로 강풍은 서서히 힘을 잃고 어느결에 내게로부터 빠져나간다. 소나기는 종일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계절이 지나가듯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몰아친 모든 생의 소용돌이는 한 순간 한 때 이므로 그것에 저항하며 주어진 삶을 흔들이유는 없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