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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다림영 2011. 2. 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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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glasklar),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의식과 무의식이 일체가 되고 그와 객체 관계가 지양되는 투명한 순간은 우리에게 그렇게 자주 주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분열된 의식과 전우주에 대한 고독감에 앓고 있다. 인식과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와 합하려는 노력만이 우리를 고독에서 구출한다.

그러나 우주선이 달세계를 가는 시대에 사는 인간은 영혼의 소박함을 잃은지 오래된다. 사랑도 변형된 호기심인 경우가 많고 사랑의 행위에서도 지적인, 너무도 지적인 것이 현대인이다. 누구나가 자기의 원칙과 독백속에 감금되어 있다.

 

자아에 망집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공관 속을 꿰뚫는 것은 현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기적같은 희귀한 몇 개의 순간에서만 우리는 변신을 한다. 헌신과 희생이 가능해진다. 그 순간이 지나면 생은 다시금 어두운 것, 무표정한 것으로 된다. 그속에서 아무 관련도 없이 제각기 인간은 산다. 고독한 탐구를 계속한다. 죽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 몽상한다.

 

생은 슬픈것인지도 모른다. 회한, 모든 후회는 결국 존재의 후회(Seinsreue)로 귀결된다.

태어났음의 비극은 피조물성 속에 있는 균열 즉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된 일정 기간의 생명이 신비한 힘에 의해서 우리의 의식 없이 우리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불가지성 속에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짧은, 그러나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긴 우리의 생에서 그래도 진주빛 광채를 지닌 기간이 있다면 그것은 유년기리라.

 

유년기 그것은 누구에게나 실락원이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다'라고 어떤 시인은 말했다. 어린 시절은 의외의 놀라움, 신비와 호기심, 감동에 넘친 지루하지 않은 한 페이지다. 그리고 우리는 몇 살이 돼도 그 장을 펼쳐 보고 싶어진다.

영원한 그리움, 그것은 고향에 대한 것이다. 원류에 대한 동경, 영원의 고향에 대한 거리감에 앓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귀향하려는 노력을 플라톤은 향수라 했다.

 

어릴 때 우리는 모두 초시간적이고 불사신이었다. 존재의 상처를 모르는 이상주의자였다. 성장한 뒤에도 어린 마음을 상실치 않는 이상주의자, 즉 영원한 유아는 현실과 부딪칠 때 늘 생사를 건 모험을 하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어린애로서 즉 이데알리스트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일 뿐더러 종종 카타스트로프(파국)를 가져온다."

생에 좌초한 '어린애들' 위에 디디고 서서 개가를 올리는 것은 어느 세대에나 영원한 속물들, 인간을 목적으로 알지 않고 수단으로 아는 바리새인들, 현명한 준법자들, 투철한 리얼리스트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이데아가 없다.

따라서 유년기가 없다.

 

책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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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때다. 어쩌면 나만 그러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이 호화찬란한 시절에 밥한그릇 변변히 먹지 못하고 죽어간 눈물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쩌면 고귀한 영혼을 지닌 사람인지도 모른다. 잠깐 지나간 그의 단정한 글씨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하늘나라에서 부디 펼치지못한 열정을 그리며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요즘 어린시절 살았던, 남루했지만 환하던 우리집의 마루와 안방을 가끔 꿈속에서 만나곤 한다. 아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길게 마음밖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인지, 사는것이 힘이 들수록 꿈은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것인지, 그 옛날 사회초년병이었을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자꾸만 생각나는 시절이다. 상업학교를 막 졸업하고 회사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날마다 집에와서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는 했을때이다. 아버지는 어깨를 들썩이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엄마, 아버지가 다 있는데 뭐가 그렇게 슬프냐, 힘들면 그만 두어라"...

..

이제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된 친정어머니와 시부모님은  내게 기대고 있고, 아이들도 나만 바라보고 있다. 난 너무나 남루하고 초라했지만 걱정이 없었던 그 어린시절로 돌아가고만 싶은 생각으로 젖어있다. 밤이 깊어간다. 봄이 저 멀리 어디선가 오고 있다는데 오늘은 유달리 춥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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