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황문수 옮김/문예출판사

다림영 2011. 2. 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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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러셀의 <행복의 정복>을 읽은적이 있다. 출판사도 다르고 옮긴이도 달랐을 것이다. 삼사년전쯤 된 것 같은데 글이 가슴에 박혀와서 애지중지하며 보던 책이었다. 그런데 어느사람에게 빌려주었고 언젠가부터 그녀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 방학중에 아이들에게 정말 오래간만에 책을 사주기로 했고 나도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처럼 내게도 한권 사 주었다. 내게 책을 선물한적이 언제인지 기억조차할 수 없다.

그런데 지난날 읽었던 만큼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오염되었던지 다른책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읽는 책 사이사이  몇 페이지씩 읽었다. 무척 어려웠고 책의 표지는 근사했지만  힘들게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요즘 '행복' 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무엇이 행복인가? 행복은 어디에 있는것인가? 나는 행복한가? 저 사람은 행복할까? 언제쯤이면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며 고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돈이 있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돈이 있으니까 하는 말일것이다. 엊그제 어느 강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돈이 전부가 아니야...' 라고 했던가 가끔 사람들이 그런말을 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라는 것.... 정말 맞는 말씀일 것이다. 당장 밥을 굶게 생겼는데 어디 그런말씀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뉴스에서 유망주 감독의 죽음소식을 전할 때 그의 단칸방 현관에 씌여있던 단단해보이던 글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밥 남은 것 있으면 문 앞에 놓아주세요'던가... 아 , 가난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지식인에게는...

 

수입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돈을 버는 방법은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위안을 하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날들이다.  그리고 남을 쳐다보지 않고 사는 것 ,그저 아주 작은 내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비교하지 않으며 다만 이렇게 건재하고 있고 따뜻한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일자리가 있고 허물어질 것 같지만 기댈수 있는 사람이 있고 따뜻한 햇살아래 커피한잔을 누릴 수 있는 ,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 것들이 내겐 큰 행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친구딸이 삼수를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아무런 소식도 전해주지 않는다. 또 떨어진 것이다. 그녀는 돈이 있고 달랑 딸이 하나여서 모든 것을 딸에게 쏟아부었다. 그러나 긴시간 쏟아부었던 돈과 마음과 모든 것들은 수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인생이 어디 대학입시로 성공을 가늠할 수 있으랴만 지금 당장 그녀와 딸은 불행속에 헤매고 있다. 아마도 그녀가 돈이 없었다면 그렇게 긴시간 딸에게 올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번 떨어졌다면 재수는 절대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재수를 시킬때 또 삼수를 시킬때 우리는 옳은방법이 아닐거런 얘기도 전했지만 그녀는 우리의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특별한 뜻이 있고 전공을 살려 긴 인생을 성공가도를 달려야 하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년동안 긴시간 그 압박속에서 아직도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것을 보면 보는이로 하여금 괴로움이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지금 그녀와 딸이 웃을 수 없고 의욕의 상실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지가 같지 않으니 어찌 그마음을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아니다 싶을때 빨리 돌아서는 것이 어쩌면 현명한 선택은 아닌지, 훌훌 털고 새로운 또 다른 길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지 싶지만 함부로 얘기를 전할수도 없다.

 

인생은 새옹지마다. 어떤일로 그녀가 행복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고삼에 들어서는 나의 아이에게  그녀의 아픈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일 년 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금 당장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래보며...

 

 

 

 

책 뒷장에서

현대인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이 책은 20세기 철학의 거봉 버트런드 러셀 경이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인 행복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 명저다.

사람들은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행복에 관해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복해지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행복은 결코 우연히 호주머니에 들어오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러셀 특유의 명쾌한 합리성을 바탕으로 유려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체로 서술된 이 책은 현대인이 행복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평이하게 서술한다. 수필을 대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인간과 삶에 대한 러셀의 지혜로운 통찰에 흠뻑 빠져든, 행복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나는 소년 시절에 행복에 취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우물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키가 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육이 강한 그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라서, 1885년 국회의원 선거권을 갖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그러한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행복은 지적 원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자연의 법칙에 대한 신념, 종<種>의 완전성, 공공복리의 공동 소유,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궁극적 승리, 그리고 지식인들이 인생을 즐기는 데 꼭 필요하다고 하는 기타의 신조 등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행복은 육체적 정력, 충분한 일감, 또는 도저히 파내지 못할 것 같은 암석의 장해를 극복하는 일 등에 바탕을 둔 행복이었다.

 

우리 집 정원사의 행복도 같은 종류의 것이다. 그는 일 년 내내 토끼와 전쟁을 치르는데, 늘 런던 경시청이 볼셰비키에 대해 하는 말과 똑 같은 말을 한다. 즉 토끼는 불가사의 하고 음흉하며 사납고 토끼와 마찬가지로 교활한 수단에 의해서만 토끼한대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저녁 죽이는데도 이튿날 아침이면 이상하게도 다시 살아나는 한 마리의 멧돼지를 사냥하며 매일매일을 보낸 발할라의 영웅처럼 정원사는 매일 적을 살육하지만 내일은 적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그는 70이 넘었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16마일의 언덕길을 자전거로 왕복한다. 그러나 환희의 샘은 마르지 않느데, 환희를 공급하는 것은 바로 '그 토끼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기쁨은 우리들처럼 이른바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당신은 말할지도 모르겠다. 토끼와 같은 하찮은 짐승과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서 우리가 어떠한 환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러한 논의는 졸렬한 것이다. 토끼는 황열병 간상균보다 훨씬 크다. 그런데 뛰어난 사람은 황열병 간상균과 전쟁을 하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감정상의 만족에 관한 한 우리집 정원사의 기쁨과 똑같은 기뿜을 맛볼 수 있는 길이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도 열려 있다. 교육에 의해 생긴 차이는 이러한 기쁨을 얻는 활동에 있을뿐이다. 어떤 일을 성취함으로써 얻는 기쁨에는 여러가지 곤란이 따른다. 이것이 자기 능력에 대한 겸허한 평가는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주된 이유이다.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성공했을 때 언제나 놀라지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실패할 때 놀란다.

 

같은 놀라움이라도 전자는 유쾌하지만, 후자는 불쾌하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자만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는 것이 진취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행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 한 당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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