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수박 /김광규

다림영 2010. 8. 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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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김광규

 

작년 여름에도 그랬었다

매연 자욱한 버스정류장에서

테레사를 닮은 아주머니는 신문을 팔고

아이들은 고가도로 밑에서

런닝셔츠 바람으로 자전거를 탄다

생선냄새 비릿한 서울시장 입구

딸기아저씨 리어카에는

얼룩말이 낳은 알처럼

둥그런 수박들이 가득하다

골목길 막다른 집 홍제옥

과부댁은 자식들과 모여 앉아

커다란 수박을 단숨에 먹어치우고

다시 헛헛한 땀을 흘리며

개장국을 끓이기 시작한다

작년 이 무렵에도 그랬었다

새로운 여름은 오지 않고

밤에도 깊어지지 않고

변함없는 여름만 가버린다

네모난 수박이 나올 때까지

돌아갈 집도 없이

여름은 언제나 이럴 것인가

 

 

----

 

에어컨을 들여놓고도 나의 여름은 언제나 덥다.

작년에도 그랬고 제작년에도 그랬다.

언젠가 동생이 하던말이 생각난다.

'누나는 육십이 되어도 그럴껄'

맞다. 그럴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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