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수요일 조선일보 윤용인 아저씨 가라사데
테니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김없이 듣는 말은 어깨에 힘 빼라는 소리다. "어깨에 힘 들어가면 부드러운 스윙이 안 나옵니다." 코치는 말 많은 시어미처럼 잔소리를 늘어 놓는다. 아아, 듣기 싫어라. 골프 할 때도 질리게 듣던 말이다. 무조건 멀리 보낼 욕심으로 너 죽고 나 죽자며 골프채를 휘둘러봐야 뒤땅만 치고 힘만 빠질 뿐이었다.
공은 빈혈 걸린 새처럼 맥없이 날아가다 총맞은 새처럼 툭 하고 떨어졌다. 그때마다 코치는 앵무새처럼 반복햇다."어깨 힘 빼는 데 3년입니다. 힘 빼세요. 힘!" 수영장에서도, 야구장에서도, 배드민턴 코트에서도 가르치는 자들은 똑같은 소리를 했다.
운동할 때만 '어깨 힘'타령을 들었던 것도 아니다. 글쟁이 선배들에게도 그 말ㅇ을 들어야 했다. "어개에 힘 좀 빼라. 힘이 들어가니 글이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너무 멋있게 쓰려고 용을 써봐야 쌓이는 것은 파지뿐이었다. 의욕의 과잉은 상실감만 낳을 뿐, 어깨 힘을 뺐을 때 유연함이 생기고 유연해야 유용한 힘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다는 것을 배워 나갔다.
그러나 머리로만 이해했다. 운동기구만 손에 쥐면 어깨가 굳어지고, 키보드 앞에 앉으면 쥐까지 내린다. 찍찍.
그러다 문득 엉뚱한 의문이 봄처럼 고래를 쑥 내밀었다. '늘 힘을 빼라고만 하는데, 살아가면서 어깨힘은 언제 줘야 하는 것이지?' 이 질문을 트위터에 올렷더니, 트위터 친구들이 각자 재치있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중 중년 심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렇게 말했다. '어깨에 힘줘야 할 때? 혼자 있을 때!'
순간 거실에 홀로 앉아 어깨에 잔뜩 을 주고 TV를 보는 그이의 모습이 더올라 킥킥 거리며 웃엇지만, 되새겨 볼 수록 저 답은 사골 국물처럼 생각할 거리를 자꾸 우려내고 있었다.
중년은 두 개의 다른 모습을 갖는 시기다. 사회에서 그들은 구력 있는 투수답게 자신 있게 공을 뿌린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그들은 부상당한 투수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버스안에서, 식당에서, 공공장소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어린아이들 아니면 중년이다. 대우받는 인생의 꼭짓점에서 매사에 거침 없었던 그들은, 자기의 방에서는 순간순간 좌절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받아든 삶의 성적표가 너무 초라한 것은 아닌지를 끊임없이 회의한다. 남들은 다 성공한 것 같고 자신만 실패한 인생을 사는 기분이 들어 조급해하고 우울해 한다.
'어깨에 힘은 혼자 있을 때 주라'는 전문가의 잛은 조언은, 무리 속에서는 겸손하고 혼자 있을 때 자존감을 강화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거울 앞에 홀로 서서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년은 건강해 보인다. '내 힘으로 일가 이루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사는 인생이라면 성공한 것'이라고 자부하는 중년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 정도면 어깨에 힘줄 자격 충분하지 않은가?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니, 어깨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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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이룬것들 속에서 오늘도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른이들과 비교하면 극히 미진한 성적표일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성적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 이정도면 성공한 것이다.
그래 혼자 있을 때 어깨에 힘을 주고 나의 자존감을 강화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