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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안도현
소나기 한 차례 쏟아진 뒤에
다시 햇볕의 잔치판이다
비 맞은 흔적을 지우려고
새잎을 반 뼘쯤 내민 감나무가
빗물을 털고 일어서자
마늘밭에 줄지어 선 마늘순이 덩달아 몸을 떤다
비의 기억을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는 듯
돌멩이는 돌멩이끼리 모여 이마를 내어 말리고
돌 틈 사이 풀들도
가는 손을 뻗어 볕을 쬐려고 옹송거린다
그래도 태연한 것들은
일찍이 버려진 것들이다
마당가에 나뒹구는 스테인리스 밥그릇,
다 삭은 고무신 한 짝,
이 빠진 옹기,
오래 전부터 퍼질러앉은 확독,
둥근 입이 몸인 것들이
온몸으로
고요히 빗물을 받쳐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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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소낙비에 젖었던 마음들을 주워들고 창가를 기웃댄다.
....
봄은 왜 이렇게 더디게만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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