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다시 읽는 우리 수필/김종완 편저

다림영 2009. 12. 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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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같은 책이다.

내내 두고 들여다 보면 참 좋겠다.

법정, 박연구, 전혜린, 유병석, 손광성, 박완서 ..

이분들의 수필이 들어 있다. 모두 아름답고 근사한 글이고 나는 그저 부지런히 글을 읽으며 마음살을 찌워야 할 것이다.

지은이에 따라 몇편의 수필과 뒤에 보충설명으로 엮어 나 같은 이는 이해가 쉽고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어 굉장히 좋았다.

 

그분들중 손광성님의 책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손광성선생님의 수필은 한폭의 그림같았다.

이책을 만든이께서 이 분을 언급하기를

..

"만약 독자가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겠노라는 야망을 지닌 수필가라면 손광성의  수필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읽고 난 다음, 누군가가 그 정상에 이미 깃발을 꽂았다는 사실이 줄 열패감에 싸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피천득이 한국인으로 수필의 아름다움이라는 봉우리에 맨 처음으로 깃발을 꽂았다면, 손광성은 두번째로 깃발을 꽂은 이 시대 최고의 수필 아티스트임에 틀림 없다. .." 고 하셨다.

 

 

 

"배는 너무 나온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홀쭉한 것도 아니다. 잉태한 지 네댓 달은 족히 되어서 눈에 거슬리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기 좋을 정도로 알맞게 부른 그런 여인의 배 같다.

 

운두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된 선이 조용히 내려가는 가 하면 어느새 다리께쯤에서는 저고리 깃선처럼 둥그스럼하게 휘어진다. 이 휘어진 선이 다시 한 번 빠른 속도로 꺽이면서 직선으로 되돌아간 채 서서히 바닥가지 내려가서 멈춘다. 직선이 주는 날카로움을 곡선이 부드럽게 감싼다.

 

 

두다리의 직선과 복부의 부드러운 곡선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오묘한 아름다움 , 마치 토르소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흔한 토르소가 아니고, 천에 하나만에 하나나 될까 말까 한 그런 드문 기회가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토르소. 그러니까 미의 여신상이거나 아니면 풍요의 여신상같은 그런 토르소라는 이야기이다.

 

 

선은 부드럽지만 고려자기처럼 애조를 띤 것은 아니다. 이조자기처럼 튼실하다. 절제하면서도 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그런 선이다. 가락으로 치자면 진양조는 아니고 중모리거나 중중모리쯤이나 될까? 웃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 삼화령 협시보살 두 분 가운데서 왼쪽에 서 있는 애기보살의 웃음만큼이나 무구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슬며시 다가가서 지그시 안아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기찬 물건을 만들어낸 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무리 보아도 석공은 아니었던 것같다. 재주를 자랑한 흔적도 없고 돈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다. 도무지 계산 속이 보이지 않는다. 열흘도 좋고 한달도 좋다. 마음속에 잠든 고운 임을 모셔내듯, 그런 정성으로 쪼아낸 작품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듯 구구절절이 살마의 마음을 잡고 놓지 않을 리가 없다. 어찌 보면 착한 머습이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주인집 젊은 마님을 위해 만든 것도 같고, 또 어찌보면 길을 가던 나그네가 하룻밤 묵은 주막집 여주인의 정이 하도 따스워서 그냥 떠날 수는 없고, 마음의 한 자락 이나마 남기고자, 한 조각 한 조각 쪼아서 만들어 놓은 것도 같다..... 손광성의 돌절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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