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잃어버린줄 알았던 편지

다림영 2009. 9. 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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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을 정리하다가 잃어버린줄 알고 있었던 편지를 찾게 되었다. 

그 오래전 내 모습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에 젖어들었다.

이렇게 어딘가에 나의 과거들이 세월과 함께 켜켜히 내려앉은 먼지 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가만 들여다 보니 도무지 무슨말인지 알수가 없다.

그러나 그땐 다 알수 있었다.

연필로 동그라미도 해 놓고 단어의 뜻도 열심히 적어 놓았다.

참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사진을 찍어 둔다.

두고두고 들여다 보며 나는 그 옛날이야기를 먹고 살리라.

조금더 지성적이고 현명했던 소녀였더라면 하는 마음으로..

 

 

몇년전에 썼던  글 <편지> 

편지


나는 사춘기 시절, ‘사랑해, 밤배, 편지......’ 이런 류의 노래를 창가에 나와 앉아 기타를 치며 부르곤 했다. 노래를 부르다가 지치면 포크송 책자 맨 뒷장을 펼친다. 그곳엔 수 십 명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바야흐로 펜팔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때, 왕개 라는 이름에서 나의 시선은 멈추었다. 그의 신상메모가 나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였을 것이다. 물방개의 한 종류일 것 같은 이름이 반짝거리며 내 가슴의 좁은 연못으로 헤엄쳐 들어온 것이다.

 

 


그 당시 소녀들은 먼 지방 혹은 외국의 사람들과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친구로 사귀곤 하였다. 그러한 우정은 눈처럼 쌓이고 녹아내리기를 거듭 하며 어떠한 지극한 만남을 이루게도 하였다.
차마 눈을 뜨고는 읽을 수 없는 유치한 글이 씌여 있기도 하고 기품이 서려있기도 한 내용의 편지들도 있었다. 교내를 표류하던 그러한 편지들은 소녀들의 화제가 되기도 하고 때로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어떠한 막연한 꿈에 젖어들게도 하였다.

 



나는 영어를 참 좋아했다. 어느 때엔 영어단어를 외우다가 전봇대에 이마를 부딪친 적도 있었고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가면서도 단어장을 들고 외워대곤 한 것이다.
왕개는 대만사람이었다. 그의 나라는 우리와는 달리 평상시에도 영어가 통용되었다.

 

 

나는 되지도 않는 영어로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와 몇 번의 서신이 오고 갔다. 어느 날 그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소녀시절 나는 터질 것 같은 볼을 가지고 있었다. 그 여파로 나의 눈은 완전한 새우 눈이 되어 있었다. 앞집 오빠가 놀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야, 새우 눈? 너 나 반밖에 안보이지?’
사진을 찍으면 실물보다 훨씬 안 나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먼저 사진을 보내왔다. 정말 잘 생긴 귀공자 타입이었다. 사진과 더불어 대만의 어느 거리를 바람 따라 뒹굴었을 몇 개의 나뭇잎과 엷은 커피색의 가죽으로 별을 만들고 그 별에 멋진 詩를 적어 보내왔다. 어쩌면 그 시절 여린 소녀들보다 더 깊은 감성을 가진 사람 같았다.

 

 

그가 사진을 보내왔으므로 나도 사진을 보내야 했다. 집 앞 배추밭에서 엄마 옷 중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어설프게 차려 입고 촌스러운 포즈로 몇 장을 찍었다. 그중 조금 나아보이는 것으로 보냈는데 예쁘다는 말이 씌어 있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언제나 가방 한 귀퉁이에 그의 편지와 사진과 별을 넣어가지고 다니며 어린아이처럼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편지가 바다건너 날아오면 나는 반가움에 들떠 사전을 들고 반나절 이상 단어를 찾아 헤매곤 했다. 얼마나 즐겁고 신이 나던지, 돌아보니 내게 그러한 일들이 꿈에라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왕개는 줄곧 영어로 편지를 보냈는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한자로 빼곡히 사연을 담아 보내왔다. 그렇게 한문을 잘 쓸 수가 없었다. 대단한 명필로 기억된다. 나는 괜스레 부아가 났다. ‘아니 영어로 잘 보내더니 잘 난 척 하고 있어’ 하는 가시 돋친 마음으로 옥편을 보고 일일이 한자를 찾다가는 읽기를 접어두고, 나의 모국어인 한글로 또박또박 그때의 좋지 않던 마음을 마구 적어서 보냈다. 그 후 그의 사과의 편지를 받았으나 애국심에 불타올라 답장을 보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이 무슨 애국심과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문으로 빼곡히 마음을 담았던 편지로 하여금 내게 절교를 당했던 왕개도 이젠 중년의 신사가 되었을 것이다. 때로 나와 주고받으며 들뜨고 즐거워하였던 편지를 한번쯤 생각이나 할런지 모르겠다. 그때를 회상하니 나는 얼마나 좁은 소견을 가진 소녀였던지 …….

 



시집오기 전, 남자들과의 유쾌하거나 간혹 애틋한 내용의 편지를 의식을 치루 듯 한 장 한 장 촛불에 태워 버렸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 듯 간직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불현듯 인다. 다정하고 즐거움이 깃든 편지, 일 년에 한두 번쯤 꺼내어 보며 지난날을 추억할 것을. 그러면 최소한 하루정도는 엷고 순한 빛으로 물이 들어 한동안 들꽃을 안은 듯 소박한 행복을 누리기도 하였을 터인데…….

 


지금은 인터넷으로 하여금 수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단 몇 초 만에 편지를 날려 보낼 수 있다. 이러한 세상이 오리라고 그때엔 꿈도 꾸지 못했다. 참으로 근사한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밤새 마음을 가득 담아 편지를 쓰고 지우기를 거듭하고 다음날 아침이면 우체국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던 드라마 속 같은 풍경들은 어디에서든 찾아 볼 수 없다. 추억의 미로 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날아든 우편물들은 온통 현란한 광고물과 삭막한 고지서뿐이다.
동네 입구나 사거리쯤 자리를 잡고, 오고가는 이들을 환하게 반기던 빨간 우체통도 하나둘 어디 론가로 사라지고 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마루에 나와 앉아 턱을 괴고, 오랫동안 신작로를 내다보며 기다리던 편지.
‘때릉 때릉’
우체부 아저씨의 자전거 벨소리가 문득 들리는 듯하다.
‘편지요’ 하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나는 문지방을 넘어 맨발로 뛰어나갔다.
아름다운 시절, 편지를 부치고 우체국에서 돌아 나오며 에메랄드빛 하늘을 응시하고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외던 한 소녀가 있었다.
가슴 한편 아련한 그리움으로 읊조리던 유치환의 행복이란 詩를 적어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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