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生의 적당한 짐은

다림영 2008. 9. 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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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월요일/약간의 더위/남편과함께 하는 날

 

 

어젠 막내와 남편과 등산을 했다.

우린 늘 휴일이면 산엘 간다.

막걸리 두병에 이것저것 을 챙겨 그렇게 산에 오른다.

어젠 특별히 오후 약속이 있어서 별스런 것들은 챙기지 않고 아침 일찍 올랐다.

바나나 몇개와 요구르트 그리고 뜨거운 물만 보온병에 담아갔다.

 

나서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그곳에 있지 않으면 만끽할 수 없다.

신선한 공기와  풋풋하게 깨어나는 것들속에서 사람또한 자연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아침의 산행은 그 어느때보다 생생하고 파랗다.

몸의 곳곳이 싱그러워 지며 아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오며 나는 파랗게 채색된다.

 

나의 막내녀석은 날 다람쥐였다. 조그만것이 이것저것 살피며 잘도 올라갔다.

청솔모는 물론이거니와 딱따구리까지 만났다. 신나는 녀석의 산행이었다.

 

그런데 막내녀석이 갑자기 배에서 소리가 난다고 하는 것이다.

바나나를 먹고 물을 먹어서 그런가 하며 물소리 일꺼야 했다.

다시 또어느만큼 가니 녀석이 또 그러는 것이다.

가만 들어보니 내게도 들렸다.

 

그것은 녀석뱃속의 소리가 아니라 내 베낭속 보온병의 물소리였다.

보온병엔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물이 차 있을땐 별 소리가 없더니 그렇게 비워지게 되니 텅 텅 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생각에 빠졌다.

조그만 바위를 디디고 오르며 그렇구나 했다.

비워지니 소리가 난다...

울림이 있다.그소리는 마치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특별한 소리였다.

 

텅,텅 텅....

신기한 울림.

비워지니 아름다운 소리가 생겨나고 그것은 내가슴에 각별한 울림이 되어

어떠한 진귀한 말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무언가 채우려 날마다 땀을 흘리고 있었다.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채우는데 앞설 것이 아니였다.

그저 비워 내며 맑은 울림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 가져간 물과 약간의 먹을것을 다 해치우고 우린 서둘러 하산 했다.

그런데 자꾸만 가방끈이 옆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나는 또 생각에 빠져들었다.

짐이 있을땐 아무렇지 않던 것이 베낭속 의 먹을 것들을 다 비우고 헐겁게 메고 가니

끈이 자꾸만 미끄러진다!

이것은 또 무언가.

 

산을 오를때의 나의 베낭은 어떠한 짐의 무게로  미끄러지지 않았다.

헐거워지니 자꾸만 제 본분을 잊어버리고 미끄러지고 마는 베낭의 끈이었다.

양쪽의 끈을 손으로 잡고 내려오면서 또하나의 깨달음에 젖는다.

 

生의 적당한 짐은 나를 온전한 길로 이끌어 가는 것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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