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1월 26일 에 샀다고 표기가 되어 있다.
나는 그때 무얼 알아서 이책을 선뜻 사게 되었을까.
며칠 잡고 있었으나 집중이 쉽지 않고 어렵기만 하다.
그저 뒤적이며 읽을 수 밖에..
"예전선인들은 인격수양을 위해 배움을 쉬지 않았는데
요즘은 남에게 알리기 위해 배움을 쉬지 않는다"
는 말씀을 어느 책 속에서 발견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책을 뒤적이는가 .
"인간이 이성의 목소리를 차츰 똑똑하게 듣게 되고, 그 목소리에 차츰 빈번히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 목소리가 개인적인 행복과 허망한 의무로 인간을 부르는 목소리보다 더욱 강해질 때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다.
아니 , 이미 다가왔다. 일면으로는 유혹을 수반하고 있는 개인적삶이 행복을 줄 수 없다는것,
그리고 다른 일면으로는, 인간이 규정한 온갖 의무를 준수하는 것이 인간의 발생의 본원인 이성적이고 자비로 가득찬
원천에 대하여 그가 지고 있는 빚을 갚을 능력을 인간으로 부터 빼앗아 버리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것,
이 두가지가 차츰 뚜렷해지고 있다. 아무런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없는 것 속에 믿음을 두기를 강요하는 낡은 속임수는 이미
닳아빠져 버렸으므로 우리는 다시는 그곳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를 믿어라. 이성은 당신을 속일 것이다. 다만 신앙
만이 당신에게 참되 행복을 계시해 줄 것이다.> 라고.
그리하여 인간은 믿으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의 교섭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무엇
인가를 믿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들의 신앙이 큰 행복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신앙 가운데 어느 것을 믿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할 필요가 생겼으나, 이것은 완전히 이성에 의해서
결정지을 수 밖에 없다.
사람은 언제나 모든것을 자기의 이성을 통하여 이해하지, 신앙을 통하여 이해하지 않는다. <사람은 다만 신앙을 통하여만
알 수 있지. 이성을 통해서 알수는 없다. >하고 단언함으로써 사람을 속이는 것이 한때는 가능하였지만, 사람이 모두 신앙
을 알고 그가 자기의 신앙을 내세우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도 다른 신앙을 내세우는 것을 보게 되자. 그는 일을 이성에
의하여 결정 지을 필요성에 몰리게 되었다.
이슬람교를 알게 된 불교도가 만일 여전히 불교도로 처신한다면, 그것은 이미 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에 의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신앙이 그의 앞에 나타나서 자기의 신앙을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제시된 신앙을 버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일어나게 되면, 그 문제는 이성에 의하여 결정짓는 수 밖에 없다.
만일 그 가 이슬람교를 알게 된 뒤에도 여전히 불교도로 계속 처신하게 된다면, 부처에 대한 그의 종전ㅇ의 맹목적인 신앙은 이미 합
리적인 기초 위에 선 신앙으로 대체 되는 것이다.
현대 에 있어서 이성에 의하지 않고 신앙을 통하여 사람에게 정신적인 것을 주입하고자 하는 기도는, 마치 입을 통하여서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꾀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 사이의 교섭은, 그들 모두에게 공통된 지식의 근거를 그들에게 알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이전의 잘못으로 되돌아 갈 수
는 없다. 죽은 사람이 신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되살아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아니 이미 왔다.
그 목소리를 지워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목소리는 어떤 개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각 개인의 내부에도, 인류의 탁월한 사람들 속에도, 그리고 이미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사람들 속에서도 한결같이 표명되고 있는 인류의 합리적 의식 전체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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