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사소한 여행

다림영 2008. 7. 19. 21:43
728x90
반응형

 

눈이 피로하다.

필사를 많이 한탓인지 책을 번갈아 가며 뒤적인 탓인지 오늘은 특별히 피로하게 느껴진다.

잠시 잠시 가만히 눈을 감고 조르쥬무스타키의 목소리에 젖어본다.

그의 목소리는 이런날 들으면 참 좋다. 젖은 밤바람같은 목소리다.

종일 가곡에 마음을 실었다가 불현듯 그가 생각나 돌아왔다.

 

멈추지 않을 것같은 비였다. 다행이다.

그렇게 종일 오고 또 왔다가는 무슨일이 나도 단단히 났을 것이다.

 

 ***

9시가 다 되어간다.

빨리 버스에 몸을 실었으면 좋겠다.

그래보아야 한 삼사십분 있으면 퇴근할 것인데

마구 밀려오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늦은 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때가 나는 참 좋다.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밀려드는 바람에 눈을 감아보기도 하고

역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무심한 눈길을 주는 그 시간 정말 좋다.

 

버스에 마악 올라 출발하면 동해바다로 떠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은 들뜨고

옷가지를 챙긴 가방처럼 도시락이 든 꾸러미를  한쪽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아침엔 꼭 전철을 타지만 늦은 밤 퇴근땐 이러한 이유로 나는 반드시 버스를 탄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조르쥬무스타키의 '오래동안'은 계속 돌아간다.

 

매일마다 나는 이러한 여행하는 기분으로 버스에 오른다.

 

오분정도의 깜깜한 시골의 길을 달릴때엔

녹음의 힘찬 기운들이스며들어 지친 영혼을 깨우고

도시의 영롱한 불빛이 나타날 즈음 이면

그리운 추억들을 호명하며 꿈을 꾼다.

어느덧 복잡하기만 한 도시의 정류장에 다다르면 나는 툭툭 털고 마치 여행을 끝낸 사람처럼

큰 가방을 메고 도시락을 꾸러미를 들고 서둘러 내린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오는 길을 향해 오랫동안 눈길을 준다.

도시의 네온들은 별처럼 반짝여서 그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이 빛나기도 하는 것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게 되면 등뒤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돌아서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눈길이 있다.

머리가 희고 안경을 쓴 김밥집 남자다.

가끔 그곳에 나는 들린적이 있다.

 

 

 

 

어제 초상집에서 친구의 남편은 이렇게 얘기했다.

'장인어른이 죄를 지셨으면 비가 올테구 아니면 안오겠지'

그는 늘 우스개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뜻없이 한 말이었을 것이다.

어젯밤엔 달도 환했다.

비는 일요일에 온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오늘 아침 그 장대비를 맞고 어쨌나 모르겠다.

참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었겠다.

 

 

 

반응형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를 내는 것은 연극배우나 할 일이다.  (0) 2008.07.22
행복의 철학  (0) 2008.07.21
사만원의 부조  (0) 2008.07.18
부고  (0) 2008.07.17
기다리자  (0) 2008.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