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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할머니를 만나고

다림영 2024. 4. 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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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꼭 쥐고 내게 오셨다. 

'내가 언제 왔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 하며  소녀처럼 맑게 오셨다. 

중년의 걸음으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서

30분정도 걸려 걸어오느라 힘드셨다. 그래도 꼭 내게 오신다. 

밧데리를 가는 동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80대 인줄 알았다 하니 미소를 지으신다. 

 

어쩌면 그리 곱게도 늙을수가 있을까 싶었다.

구십이 넘었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입이 벌어졌다. 

신체도 단단해 보였고 얼굴의 미소는 정말 예뻤다. 

 닮고 싶다 말씀드리니 고맙다 하신다.

 

평생의 군인의 아내로 살았고 10년전에 할아버지를 보내드렸고  자식은 딸셋에 아들은 둘이 있고

간호사 막내딸이 이런저런 걸 다 봐주고 가끔 찾아와 엄마 얼굴을 부비는

나이든 아들도 있다며 얘기를 하시는데

미소를 담뿍 담은 모습이 얼마나 고운지  한참 바라보았다.  

 

노인정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고 매년  생일잔치를 해준다고 자랑하시고 

전화속에서 울리는 큰 목소리는 교회에서 점심자시러 나오라는 당부다.

주변이 온통 사랑이다. 

곱고 다정한 모습으로 늙는 사람의 곁은 언제나 환하다. 

 

언제부터 나는 고운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이 소망이었다. 

열심히 입꼬리를 올리며 '아,에,이,오,우'를 거듭하고 마음공부를 하고

나름 수행을 한다고 별 별 것을 해내고 있다. 

그럼에도  무언가 그림자가 서린 거울 속 나를 만나면

때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비우고 내려놓으며 감사함으로 보듬고 살아가는 중이다. 

 

 

벚나무 촘촘히 서 있고 작고 흰꽃이 흩날리는 공원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때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의 신나는 모습,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정히 앉은 연인들

꽃처럼 흩날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속에 절로 웃음은 피어나고 

봄날의 벚꽃 풍경속으로 나도 걸어들어 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곱고 단정한 93세 할머니 모습이 단단히  새겨졌다. 

할머니가 내 소망이된다. 

 

할머니의 요즘 기도제목은 '자는듯이 돌아가게 해달라' 이다.

오래 살고 싶으나 이젠 가야 할때라 하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

봄꽃처럼 환하게 미소지으며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도 배우게된다. 

 

아직 노인이라고 하기엔 미치지 못하는 나이 이지만 

우리 또한 언제 죽음을 만날지는 모른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의 일이고 해주고 안해주고는  하늘의 일이라  들었다. 

 

소망하는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고  내 삶의 장인으로

부지런히 이곳 저곳 마음의 각진모서리를  잘라내고 깎고 다듬는 작업속으로 

오늘도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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