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욕심이 아닌 척 하는 욕심

다림영 2024. 4. 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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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매무새를 정갈히 하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다. 두 손을 가슴앞으로 가져간다. 양손바닥을 밀착시킨다. 공기 한 톨 들어갈 수 없게 밀착시킨다.

손에 쥔 것이, 또 쥐려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신에게 10초이상 보여드린다. 욕심 다 비웠음을 확인시켜드린 후, 욕심이 아닌 척하는 욕심하나 털어 놓는다.

 

내 눈에 비친 기도하는 모습이다.

가장 경건한 태도로 양껏 욕심을 털어놓는, 꽤 우스광스러운 행위가 기도다. 사람들은 어려운 부탁일 수록 더 많은 애교와 더 많은 아양을 동원한다. 그런데 기도엔 애교도 아양도 없다. 오로지 성스러운 표정하나로 승부한다. 우습다. 그렇다고 남의 기도에 킥킥 웃음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정도 에티켓은 갖추고 있을 거라 믿는다. 

기도는 드릴 것 드리고 받을 것 받는 단순한 의식이다. 이 짧은 주고 받음에 과한 의미를 줄 필요도, 싸늘한 시선을 줄 이유도 없다. 오늘도 살마고 신이 거래를 하는구나. 수천년 이어온 이 거래 참 질기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된다. 

 

주세요.

 

기도는 결국 이 세글자다. 합격 주세요. 건강 주세요. 이땅에 사랑과 평화를 주세요. 세상 모든 기도문은 '주세요'로 끝난다. 뭘 맡겨놓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주세요, 주세요 노래를 한다. 때론 방구석에서 독창, 때론 예배당에 모여 합창.

 

신은 간절히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도 나도 옆구리에 성경 끼고 예배당을 찾는거겠지. 그런데 이런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신이 내 기도를 씹었어. 아무리 너그러운 신도 모든 욕심을 다 들어주지는 않는다. 

 

째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도 조건이라는 게 있다. 그건 '주세요' 앞에 '했으니'를 붙일 것, 잠 안자고 공부했으니 합격 주세요. 하루 만 본 걸었으니 건강주세요. 남북 철도를 연결하는 시민단체에 침목 枕木하나 기증했으니 이땅에 사랑과 평화를 주세요. 이렇게 '했으니'를 붙여야 신이 반응하다.

 

그렇다고 또 모든 '했으니'에 다 반응하는 건 아니다. 로또 구입했으니 당첨 주세요. 이런 기도는 신에게 닿지 않는다. 노력없는 욕심에, 희생없는 소망에, 사랑없는 사랑에 응답하는 신은 없다.

 

신의 모습이 사람을 닮았다면 그에게도 눈이 있고 귀가 있을 것이다. 누가 몇 시에 잠들었는지, 만 보를 걸었는지 오천 보를 걸었는지, 침목에 보내는 척하며 침목만 보냈는지 , 신은 안다.

 

오늘은나도 욕심이 아닌척하는 욕심 하나 털어놓는다. 지금 쓰는 이 글, 군더더기 하낭 ㅓㅄ는 글고 완성하게 해주세요. 물론 내 기도에 '했으니'가 붙어야겠지, 어떤 '했으니'를 붙여야 신입 ㅏㄴ응할까. 최선을 다했으니, 이건 아닐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작가가 어디 있으랴. 또 최선인지 아닌지 가늠하는 잣대가 신의 손에들려 있다는 보장도 업삳. 더 구체적인 '했으니'를 내밀어야 한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쓰고 지우고 고치고

 

이 지루한 행위를 서른 번 반복했으니, 아니 마흔번 반복했으니 군더더기 없는 글 주세요. 오늘 나는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물론 기도하기 전에 할 일을 할 것이다. 

 

책 동사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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