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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것은 하나의 동사이다."
'모든 것은 선을 만든다'(이비 펴냄)에서 팀 잉골드 영국 애버딘대 교수는 말한다.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의 선 (線..lines)을 따라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고립된 개체에 갇힌 살덩이로만 살지 않고, 인간으 선을 뻗어서 다른 존재에서 나온 선들과 매듭 지으면서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어 살아간다.
얽히고 설킨 매듭, 긑없이 엮이고 풀리는 네트워크야말로 우리삶의 진짜 모습이다.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그 인간이 이룩한 인연의 매듭들을 살피면 된다.
인연엔 인간뿐아니라 날씨나 지형 같은 자연현상, 동식물 같은 생명체, 물건이나 조직등도 포함된다.
봄날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눈이나 얼음과 이어진 선들은 풀리고, 피어나는 봄꽃들과 매듭이 생긴다. 색깔, 향기 등 꽃의 실타래에서 나온 선들은 감탄과 경이를 일으키면서 우리와 얽혀서 곷놀이라는 매듭을 만든다. 이렇듯 주변을 둘러싼 무한의 존재와 엮이고 풀리는 매듭이 우리 자신을 이룩해간다.
인간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바라지 않아도 인연은 다가오기에 아무도 태어날 때 주어진 대로 살 수 없고 또 그렇게 살려하지도 않는다. 잉골드는 이를 "아이고 많이 컸네" 증후군이란 말로 설명한다.
오랜만에 친척집에 가서 어린 조카를 볼 때, 우리가 저절로 내뱉곤 하는 말이다. 몰라보게 당라진 조카의 모습은 성장과 변화가 우리삶의 진실임을 잘 보여준다.
세상에 펼쳐진 매듭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존재할지 한없이 고민하고, 다른 존재가 되기를 무한정 열망한다. 인간을 자기 자신의 제작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인간의 자기 제작은 완결되지도, 완성되지도 않는다. 열망의 '아직 아님'과 파악의 '이미 거기' 사이에서 떠돌면서 자기를 써나가려 할 뿐이다.
공동생활의 도가니 속에서 뜻하지도 , 막을 수도 없는 인연의 실타래가 우리 의도와 실현사이를 어긋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의도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뜻대로만 살려고 하는 인간은 무조건 좌절하고 실패한다.
잉골드에 따르면, 산다는 건 용기를 품고 미궁을 방랑하는 일이다.
무엇이 될지, 어떻게 이룰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직 아닌'존재가 되어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세계에서 자기를 고집하는 인간은 반드시 길을 잃고 지쳐 쓰러진다. 반대로 타자로부터 뻗어나온 선의 흔적을 찾아내고, 이를 이어받아 조심스레 매듭을 지어갈 때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오만한 고립이 아니라 겸손한 연결이 인연의 실들로 이뤄진 세계를 살아가는 비결이다. 뜻대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근대적 인가은 이를 무시했기에 위기를 맞이했다.
편집문화실험실대표 .매일경제 3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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