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옳고 그른 것은 없다

다림영 2024. 2. 16. 06:51
728x90
반응형

 

똑같은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선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악일수 있다. 그러한 차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것도 어떤 순간에는 옳고 어떤 순간에는 틀릴 수 있다. 그것은 상황에 의한 것이다. 

 

그대는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법을 배웠다.

'이것이 옳으면 저것은 그르다. 이것이 희면 저것은 검다. 이것은 신성하고 저것은 악하다.'

이러한 분석법은 거짓이다. 삶은 흑과 백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삶은 많은 부분이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밀히 살펴보면, 회색이 가장 연한 곳이 흰색이고, 회색이 가장 진한 곳이 검은 색이다.

 

결국 그것들은 회색이 확장 된 색이다. 실제는 회색으로 되어 잇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디까지가 회색이고 어디까지가 회색이 아닌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법은 참으로 어리석은 논리가 아닐 숭 벗다. 그런데도 그런 분석법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옳고 그른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만일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하고자 한다면, 그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테니 말이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만 고집하면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 상대적인 세상에서 상대적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결정 내릴 수가 없다. 단지 주시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그대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만 하는 수 밖에 없다. 

 

 

삶을 미풍처럼 받아들여라

미풍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살며시 가버린다. 미풍은 속삭이듯 다가온다. 너무나 조용히 오는 바람에 우리는 그소리를 들을 수강 벗다. 어느 순간 와 있을 쁀이다. 

 

이것이 바로 신이 오는 방식이다. 진리와 사랑이 다가오는 방식이다. 이것들은 모두 시끄러이 트럼펫을 불거나 드럼을 치는 법 없이 속삭이듯 다가온다. 이것들은 아무 귀띔도없이 불현듯 다가온다. "가도되니?"하고 묻는 법이 없다. 마치 미풍처럼 조금 전까지 없었는데 어느새 그대곁에 와 있다.

 

그리고 미풍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살며시 가 버린다. 붙잡을수도 매달릴 수도 없다. 따라서  미풍이 있는 동안은 즐기다가 미풍이 가려고 할 때는 보내라 .

 

와 준것을 감사히 여겨라. 붙잡으려고 떼쓰지 말라. 가야할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매달린다. 사랑이 다가올 때는 행복에 겨워 하다가 사랑이 가려하면 큰 상처를 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우 무의식적이고 감사할 줄 모르고, 배은망덕한 탓이다.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간다는 것을 명심하라 사랑은 저 멀리 신비로운 곳에서 날아든 선물이었고, 이제 다시 그 신비로운 곳으로 가려는 것이다. 삶을 미풍처럼 받아들이면 매달림도 집착도 없다. 가만히 맞아들이고 즐겨라.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여라 .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좋다. 

 

죽음만큼 명백한 것은 없으니 두려워 말라. 

죽은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없다. 죽음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이처럼 필연적인 것에 대해 왜 걱정하는가?

 

죽음은 필연이다. 인간이라면 모두 죽는다. 아무리 과학과 의료가 발달해도 인간의 죽음에 관해서는 어쩌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고, 수천년 전에도 그러했다. 태어나면 죽기마녈이다. 예외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완전히 잊을 수가 있다. 죽음은 그때가 언제이든 반드시 다가올 테니 말이다. 다만 어덯게 죽느냐만 모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 죽음이 피할 수 없는 명백한 것임을 이해한다면 이제 남은 것은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 하는 한 가지 절차뿐이다.

 

모두가 죽는다는 것만이 어떻든 진정한 현실이다. 머지 않아그대는 이 불변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여 죽음을 받아들여라. 아무도 죽음에서 달아나거나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편안해져라! 살아숨쉬는 동안 만큼은 철저히 삶을 즐겨라. 그리고 죽음이 찾아오면 그것 또한 온전히 즐겨라. 

 

삶의 모든 샘물은 무의식에서 솟아난다

감정이나 느낌이 초래하는 혼란이 두려워 사람들은 그것들을 억누른다. 하지만 그것들이 초래하는 혼란은 아름다운 것이다.

 

질서가 필요하면 마찬가지로 혼란도 필요하다. 질서가 필요할 대는 질서, 그 의식적인 마음을 이용하라. 혼란이 필요하면 무의식을 이용해 혼란토록 놔 두어라. 완전한 인간은 이 두가지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의식이 무의식을, 무의식이 의식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수 잇는 사람이다. 의식만을 이용해야 할 일들이 있다. 예컨대 수학이나 과학과 관련된 일은 의식만이 할 수 잇는 일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사랑과 시는 무의식에서 나온다. 이때는 의식을 한쪽으로 제쳐놓아야 한다.

의식은 두려움 때문에 사랑과 시를 억누르려고 한다. 그것들이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들어와 의식을 덮어버릴 것처럼 보이기 대문이다. 의식은 그것으로 부터 달아나 어디론가 숨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지 않다. 삶의 모든 샘물은 무의식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 

 

행복하도록 노력하라

인간이 항상 준수해야 하는 유한 의무는 행복해지려는 것이다. 

행복을 그대의 종교로 삼아라. 만일 그대가 행복하지 않다면 필시 뭔가 잘못된 것이고, 다라서 어떤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즉,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쾌락주의자다. 그리고 행복은 인간을 규정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이외에 다른 기준은 없다. 행복은 만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표시이고 불행은 어떤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으며, 다라서 어떤 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표시이다. 

 

중에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