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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가던 길, 멈춰 보았는가?

다림영 2023. 6.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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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골목길을 걷다 곷향기에 취해 어느 집 대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던 적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나를 계속 훑어본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닫고선 흠칫 놀랐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꽃향기에 취해 한참을 머물렀던 그 집 앞, 낯선 그집을 올려다보며 나는 문득 어머니도 아버지도 안 계신 고향 집 대문을 떠올렸다. 

 

이른 아침이면 창백하고 차가운 백마강의 운무가 집 안까지 밀려들던 집. 고향 집에서 풍기던 그 비릿한 냄새 속에는 늘 어딘가 모르게 곷향기가 섞여 있었다. 아카시아 곷향기였던 것 같기도 하고, 밤꽃 향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제 어디서든 꽃향기를 맡으면 웬지 아늑한 곳에 은신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풀곷 향기에서도 생의 안온함을 맡는다.

당신은 어떤가? 바쁘게 골목길 지나다가 예쁘게 피어난 장미꽃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본 적 있는가? 혹은 바람결에 실려오는 천리향이나 아카시아 꽃향기 맡으며 이 향기가 어디서 나느걸까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려본 적 있는가?

 

장미꽃이 피든 말든,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무심하게 지나쳤다면 당신의 삶은 그만큼 팍팍하고 삭막해졌다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우리 삶은 돈으로만 풍성해지는 게 아닌데, 아름다운 것들이 더해져야 비로소 풍성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자연은 향기로움과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안겨주는데, 그것들만 잘 받아서 챙겨도 우리 정말 마음의 부자로 잘살수 잇을 텐데, 내 은밀한 벗 하나쯤 달님으로 남겨두어도 좋을 텐데....

 

계절이 이렇게 제때 바뀌는데도 우린 그 장엄한 유혹에 넘어갈 줄 모르고 오로지 바쁜 일과에만 몰두하며 자기 신세를 한탄한다. 나조차도 향긋한 커피가 놓인 카페에 가서도 주로 일 이야기, 타인의 이야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한 번이라도 가난하고 힘든 신세를 경험해본 사람이라야 다른이의 어려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듯이, 잠시 가던 길 멈추고 꽃 향기를 좇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헝클어진 삶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줄 알 것이다.

 

그러니 이미 지나가 버린 아름다운 시절일랑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즐거운 기분으로 한번 살아봐야겠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신경쓰지 말고, 내 마음에게 물어보면서 그렇게 살아야겠다. 별 볼일 없는 허약한 인생이면 어떤가? 내 영혼만 행복해진다면 구태여 특별한 사람은 아 돼도 되잖은가.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고작 일 얘기, 남 얘기만 하다가 가기엔 삶이 너무 아깝다.

 

책 [삶이 지금 어딜 가느냐고 불러세웠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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