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2/17일 ESSAY
惺全 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서울의 밤거리를 걸었다. 연말 도시의 거리는 산중(山中)과는 다르게 화려했다. 사람들이 만드는 연말 풍경이 어쩌면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무는 한 해가 아쉽다는 듯 도시의 연말은 불빛으로 다정하게 반짝였다. 사람들은 어쩌면 올 한 해를 저 불빛처럼 반작이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대로 속상하고 마음 아픈 날도 있었겠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은 다 저 불빛처럼 아름다워지는 것이 시간의 진리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 삶의 모든 내용은 삶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변하고만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마술사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용서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또 아쉬운 마음으로 그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된다.
불빛이 반짝이는 연말 서울 거리를 걸으며 나는 ‘안녕’이라고 시간을 향해 작별인사를 했다. 오랫동안 시간 속을 살아왔지만 시간을 향해서 작별 인사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시간을 향해서 작별인사를 하고 싶어졌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쉬움으로 다가섰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은 것이다. 이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곶감대에서 곶감을 빼 먹듯 나는 앞으로 그렇게 아쉬운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빼 먹게 되리라.
산사(山寺)에는 가끔 요양하려고 와서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여자분이 있다. 키는 크고 야윈 몸에 병색(病色)이 완연한 분이였다. 암으로 투병중이었지만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를 머금으려고 노력했던 분이었다. 나는 아주 잠깐씩 그를 상대로 이야기를 해주고는 했다.
불교적인 이야기가 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가장 아쉽고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물었다. 그는 시간이라고 했다. 좀 더 시간이 허락된다면 아이들과 남편에게 못다 해준 모든 것을 다해주고만 싶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는 그 바람을 숙제로 안고 이 세상을 떠났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우리의 간절함에도 되돌아오지 않는 무심한 것이다.
원효스님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책(警策)하고 계신다.
“오늘도 공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악()을 짓는 일은 날로 많아지고, 금년에도 다하지 못했는데 번뇌는 끝이 없고, 내년에도 다할 가능성이 없다면 깨달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구나. 시간은 옮기고 옮겨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하루하루가 옮겨 어느새 한 달이 지나며, 한 달 한 달이 옮겨 어느새 연말에 이르렀고, 한 해가 옮겨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나니.”
그에게 시간은 악을 그치게 하는 것이었고, 번뇌를 지우는 것이었고, 공부였고, 깨달음이었다. 시간이 간다는 것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였다. 원효는 일생이 아니라 시간시간을 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가 노을과 함께 저무는 시간이면 탄식했다고 한다. “오늘도 저물었구나, 아침부터 왜 서두르지 못했던가.”
노을 앞에 선 원효의 탄식을 들어보라. 그것은 가장 절실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 부르는 시간의 절창(絶唱)이다.
시간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인디언의 12월은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이다. 그들은 자연의 변화나 영혼의 움직임을 주제로 매달 명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달력을 넘기며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그들은 말이 다툼의 근원이고 소유는 탐욕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과 무소유로 다툼과 탐욕의 한 해를 성찰하고 비우고자 했다. 그리고 의미로 충만한 새날들을 기다렸다. 달마다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살고자 했던 그들의 시간은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탐욕의 존재인 우리는 얼마나 수비게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가.
당대(唐代)의 선승(禪僧)운문(雲門 ?~949)이 대중에게 물었다. “15일 이전일에 대해서는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서 한마디 해보아라.”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스스로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지.”
과거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 시간은 양적인 길이이지만 의미의 깊이이기도 하다. 시간의 의미가 될 때 시간은 언제나 현재가 되고 영원이 된다. 시간을 끊임없이 의미로 창조해 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은 자신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내어준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행복한 살마의 매일은 날마다 좋은 날일 수밖에 없다.
산사에 돌아오니 어느새 나무는 옷을 다 벗었다. 칭병()하고 며칠 세간에 머무른 사이 산사에도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찬 바람 속에서도 의연하게 서서 날마다 봄을 일구고 있는 나무는 행복해보였다. 세월이 가고 와도 나무처럼 서서 행복을 일굴 일이다. 그렇게 의미의 시간들을 일구다 보면 우리가 사는 시간 속으로도 언젠가 날마다 좋은 날의 소식이 배달되어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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