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절로 돌아가는 길 /惺全 남해 용문사 주지

다림영 2014. 4. 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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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4월 2일

절로 돌아가는 길

 

절로 돌아가기 위해 서울에서 아침 첫 비행기를 탔다. 김포공항에 8시쯤 도착했다. 사천공항 주변 주차장에 세워둔 승합차를 끌고 남해섬에 자리한 절을 향해 출발했다.

사천 시내를 벗어나자 바다가 펼쳐졌다.

 

아침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바다, 바다가 온통 은처럼 빛났다. 햇살을 머금은 아침 바다를 만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쁨에 설렌다. 이 한량없는 아침 바다의 가치는 느끼는 사람의 것이다.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아침 바다 앞에서 그냥 초라한 이방인일 뿐이다. 나는 언제나 느낌의 부자다.

 

소유한 것은 적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행복해할 수 있는 자신의 감성이 때로 고맙기만 하다. 느낌은 소유의 빈곤을 씻어주고, 초라한 존재의 가치를 아름답게 빛나게 해준다. 아침 바다가 내게 일깨워준 느낌의 교훈이다.

 

절로 돌아가면서 이제는 바다가 내 삶의 풍경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로 돌아가는 길에 바다가 없었다면 그 길은 얼마나 단조로운 길이었을까. 차창을 스치며 지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바다의 끝없는 넓이 속에서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작은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8년 동안 바다는 나의 내면으로 들어와 내 안을 자꾸만 넓혀 주었던 것이다.

 

바다는 내 안의 이기(利己)와 집착(執着)몰아내고 푸르고 넓은 물결로 일러이며 좁은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바다가 나를 씻어주는 그 길을 돌아 절로 돌아가면 부처님의 미소가 더욱 빛나 보이고는 했다. 아마도 내 마음이 그만큼 맑아져 있기 때문일 터이다.

 

8년전 남해섬에 자리한 용문사에 처음 올 때도 바다를 만났다. 그때 바다는 화사한 벚꽃을 동무들처럼 곁에 두고 있었다. 남해대교를 지나는 길에 바람에 날리던 그 꽃잎들. 그 꽃잎의 낙화를 안고 있는 바다를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봐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풍경은 오히려 눈보다 가슴 속에서 더욱 멋지게 그려지는 것만 같았다.

 

남해대교를 지나 바닷가 마을에 차를 세우고 나는 바다를 향해 흩날리는 벚꽃 잎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길을 거느린 절이 내가 앞으로 살게 될 절이라는 사실이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끔 에 대해서 말한다. 절이란 부처님이 자리한 도량만이 아니라 절을 찾아가는 그 길까지도 포함한다고. 나에게 절을 향해 난 길은 곧 절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절을 찾아가는 사람은 그 출발부터 순례자의 마음을 지녀야만 한다고 나는 말하곤 한다. 용문사가 남해섬의 어디에 자리한 줄도 모르면서 나는 가는 길의 아름다움만으로도 그 절을 아름답게 느낄 수가 있었다.

 

절로 가는 길이 아름다워야 절이 아름답듯 우리들 인생 역시 과정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인생이라 말할 수 있다. 결과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우리들 인생의 가장 명확한 결과는 죽음이기 때문이다.

 

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이것은 매 순간 적용되는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다. 성급하게 결과를 탐하기보다는 꾸준하게 과정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많은 것을 할수 있는 사람보다 스스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돈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많은 것을 해나가는 사람은 과정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절보다 절을 찾아가는 길을 더 좋아한다. 웅장하고 큰 절보다는 길고 아름다운 길을 거느리고 있는 작은 절을 무척 좋아한다. 절을 향해 난 길에 대한 사랑이 내게는 있는다. 절을 향해 난 길을 걷다 보면 바위 같던 마음의 무게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의 길, 나는 절로 돌아가는 길을 이렇게 명명하고만 싶다.

 

언젠가 서산 부석사로 돌아갈 때도 그랬다. 그때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이 발등을 덮는 길을 나는 걸망을 메고 걸었다. 가로등 불빛을 따라 순하게 내리던 눈. 나는 한 발 한 발 걸으며 내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보았다. 발자국도 눈처럼 그렇게 순하게 찍혀 있었다. 가다가 서서 숨을 깊이 내쉬면 뽀얀 입김이 가로등 불빛을 따라 날리는 것이 보였다. 길은 멀고 눈은 점점 쌓여갔지만 마음은 걸을수록 가벼워만 졌다.

 

걷고 또 걸어도 좋았던 그 눈길이 아직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우리 모두는 얼마나 행복한 길을 걷고 있을까. 나는 절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행복하다. 이 길 위에서 나는 생각한다.

 

 

인생은 언제나 과정이고 우리들 고통의 원인은 사건이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각하고 해석하는 우리들의 방식에 있다고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언제나 우리는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는 있다.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의 길 위에서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내게 절로 돌아가는 길은 행복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절로 돌아가는 길. 아침 바다가 세상을 향해 온통 행복을 뿌릴 듯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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