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풍경

새해맞이

다림영 2014. 1. 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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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산의 정상에서 새해맞이를 했다. 오늘은 다른 해 와는 달랐다. 청마의 새 해 기운을 놓치다니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걸으면서 내내 화가 올라왔다. 아침 다섯 시에 눈을 떴다가 조금만 누웠다 일어나야지 했는데 일어나보니 해가 뜰 시각이었다. 괜스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불똥이 튀었다. 그의 탓을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가 아니지 싶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산으로 오를까 하다가 그냥 냇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

 

 

 

어둠이 채 걷히기 전, 산 정상에서의 들뜬 수런거림과 모호한 기쁨과 부지런한 이들의 벅찬 함성을 온전히 안으며 새로운 다짐을 하고 싶었다. 한 번도 놓치지 않던 해맞이를 평지에서 하다니 늙었구나 싶었다.

 

 

 

 

물소리 기차소리 자전거소리가 바보 같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들을 벗 삼아 차갑지 않은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니 냇물을 건너 회색빛 건물사이로 떠오르는 눈부신 해를 맞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은 접고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새해 메시지를 보냈다. 금세 따뜻한 인정의 새해 인사가 날아오니 맺혔던 기분이 실타래 풀리듯 스르르 풀어졌다. 괜스레 제가 잘못해 놓고 화를 내는 모습이 크지 않은 아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시간에 대한 바보 같은 미련을 버리게 되었지만 집에 가만히 있다가는 남아 있는 불씨가 누구에겐가 튈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터에 나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서둘러 나온 일터에서 신문을 읽다가 첫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것이지만 갑오년 새해 휴식의 첫날, 첫 매출이 발생했다. 그저 화를 재우고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나왔는데 뜻하지 않은 고객이었던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산에서 해맞이를 했다면 기분은 좋았겠지만 애매한 시간과 새해의 술렁이는 분위기에 취해서 술 한 잔을 기울이다가 어쩌면 별스럽지 않은 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소식이 끊겼던 친구에게서 일터로 전화가 왔다. 긴 시간 그녀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고 서로를 얘기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태어나 처음 일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는 그녀의 얘기였다. 몇 번의 메시지를 보내도 감감 무소식이었던 친구였다. 일터에 나오지 않았다면 새벽에나 들어온다는 그녀의 얘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새로운 날의 눈부신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집에서 만들어온 떡국으로 따뜻한 점심을 마치고 훈훈한 마음으로 문을 활짝 열고 화분에 물을 주니 에너지를 받는 것은 나다.

좋지 않게 시작되었던 새해 첫날 스스로에게 실망하여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나는 안다. 나쁜 일은 꼭 나쁘게 맺지 않으며 더 좋은 일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화의 기운을 느꼈을 때는 그것을 인지하고 빨리 떠나보내고 새 걸음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더 이상의 화기가 다른 곳으로 번지지 않을 것이다.

조금 늦었지만 벌떡 일어나 냇물과 함께 걸었던 내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올 한해도 잘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며 환한 미소로 내내 평온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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