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문무학
'없다'는 가볍다
비었기 때문이다
무거운 것 천지에 없을 것 같지만
가진 것 정말 없을 땐
온몸이 다 무겁다
숲을 읽다
문무학
뒷짐 지고 천천히 수런대는 숲에 든다
있어도 없는 듯, 없는 듯 또 이어지는
굽은 길 그 구비마다 설렘이 넘쳐난다
이 숲의 글자는 초록 잉크 흘림체
옹졸한 논리로는 풀어내지 못하고
다 열린 가슴이라야 알아차릴 짜임이다
가로로 내리 긋고, 세로로 펼쳐놓은
상형의 글자 속을 난 자꾸 헤매는데
멧새는 쪼르르 와서 금방 읽고 날아간다.
햇살이 보다 못해 밑줄까지 그어주며
여길 봐라, 여길 봐라 채근하고 있지만
외마디 감탄사 밖을 넘어서지 못하고…….
2012년『 대구시조 제16호 』,《대구시조시인협회刊》에서
어느 지역이나 지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여러 모임이 형성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지역의 모임에 익숙하지 않아 필요성 그 자체를 느끼지 않고 있다. 이런 지역적 성격의 모임보다는 취향과 뜻이 같은 동인의 모임을 더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왠지 지역을 아우르지 않는 단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이 또한 숲의 나무를 보면서 숲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맹점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햇살이 어디 숲에만 비추겠는가. 문무학 시인의 「숲을 읽다 」를 읽으면서 지역주의, 이 벽이 주는 문학의 외형이 높은 산을 형성하지 못하는 한계는 아닌지 생각을 해 본다. 나무의 숲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모래사막같은 땅도 필요하다. 숲이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일수는 있지만, 자연의 본 모습은 그 숲보다 사막같은 곳은 사람이 침범하지 못하게, 바다처럼 사람이 넘어서지 못하는 그러한 자연의 숲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자연의 진리를 사람이 읽어낸다는 것은 이기적이지 않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으로 바꾸려 하지 않을 때 멧새가 숲에 들어 살아가듯이 그 속에 스스로 묻혀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출처] 한결추천시메일-2708 (문무학 作 / 숲을 읽다)|작성자 한결
바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이 된 것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닌 바다가 되었다.
섬
‘서다’라는 동사를 명사화하면
‘섬’이 된다
뭍에서 멀리 떨어져
마냥 물을 그리는 섬
사람은
혼자서는 그때부터
섬이 되는 것이다.
그냥
‘그냥’이란 말과 마냥
친해지고 싶다 나는
그냥그냥 자꾸 읊조리면
속된 것 다 빠져나가
얼마나 가벼워지느냐
그냥그냥
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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