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를 찾아서 3/임영조(1943~2003)-
고2 때 기말시험 보던 날
납부금 안 냈다고 쫓겨난 나는
고향집에 내려가 식구들 몰래
새끼 밴 염소를 내다 팔았다
간재재 넘어 삼십여 리 길
팔려가는 낌새를 알아차린 듯
거품 물고 버티며 울부짖던 염소를
판교장에 끌고 가 헐값에 팔았다
삼십 년 지난 오늘
이제야 비로소 깨닫느니
내가 염소를 내다 판 게 아니라
염소가 나를
대처에 판 걸 알았다
이 고달픈 생(生)을
어디에 안녕히 뿌려놓지 못하고
세월의 볼모처럼 덜미잡힌 채
날마다 헐레벌떡 끌려온 내가
굴레 쓴 염소임을 알았다
<감상>
통영에서 배를 타고 작은 섬 소매물도에 닿은 적이 있습니다. 한 십 년 전쯤의 일인 듯싶은데 밤 열한 시가 되기도 전에
섬 전체에 전기가 끊겨 에라 모르겠다, 민박집 밖으로 나와 바위틈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어째 저렇게 별들이 튀밥 같
을까 하며 쉬… 오줌을 누던 기억이 납니다. 밤의 어둠이 아니었다면 그렇듯 객쩍은 용기를 냈을까 싶었는데 다음날 칠흑
을 가죽으로 껴입은 채 절벽을 놀이터 삼던 검은 염소들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자연을 네 발에 놓고 공 굴리듯 맘껏 가
지고 놀더란 말입니다. 끝 간 데 없이 거리낌 없는 저 자유! 그러나 이런 축복 속의 염소가 이 세상 염소 나라의 몇 퍼센트
나 되려나요. 굴레 쓴 외양간 염소를 안쓰럽게 바라볼 때 우리들 두 눈동자에 맺힌 상이 당신 아니면 나의 실루엣일 적 아
마도 참 잦았을 겁니다. 발버둥 쳐봤자 더 압박해오는 굴레에 얌전히 따라갈 수밖에 없는 염소, 염소, 오 불쌍한 우리라는
염소들!
-김민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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