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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스탄 사막의 밤하늘/정경

다림영 2013. 6. 2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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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스탄 사막의 밤하늘/정경

 

그날 저녁 우리는 어린왕자라도 만날 것처럼 사막 한가운데에다 잠자리를 폈다. 별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해서다. 고작 하룻밤의 낙타 여행이지만 가장 이국적인 정취를 맛볼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인도여행의 경험이 풍부한 가이드는 낙타여행(camel sapari)만은 곡 하고 가기를 권유했다. 다른 스케줄을 취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만은 보고 가야 한다고 했다. 이곳 라지스탄의 사막은 별을 가장 가가이서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인도 여행의 백미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별이 가장 가까워지는 곳이라니. 그 표현이 멋이 있어서 나도 약간은 마음의 동요가 느껴졌다.

 

이곳 라지스탄에 잇는 도시들은 이름부터가 아름답다. 자이프로, 우다이푸르, 자이잘메르 등등, 모두가 왕궁이 있었던 고도의 지명으로 성 이름을 따 붙여진 것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들 유적지를 찾아 사막을 가로질러 낙타의 등에 흔들리며 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가슴 뛰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오아시스란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만날 때부터 얼마나 불가사의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던 이름이던가.

 

하지만 우리는 한 달 가까운 배낭여행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별이라면 넓디넓은 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지겹도록 보아 왔다 . 게다가 나는 이미 미국에 있을 때 사막의 달과 별빛에 흠뻑 취해 본 적도 있었다. 데스밸리와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목에서였다.

 

데스밸리는 미국에서 가장 지층이 낮은 곳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한 곳이지만 죽음의 계곡이란 이름 그대로 웬만한 용기 없이는 갈 곳이 못 된다. 특히 4월 이후는 살인적인 지열 때문에 모험심 강한 미국인조차 가기를 거린다. 달아오르는 태양의 복사열은 지열을 높이고 물을 고갈시키며 염전을 넓힌다. 그 옛날 서부 개척 시절에는 금광을 찾아가는 지름길로서 그곳에 들어서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게 했다던 악명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는 겁도 없이 자연의 환상에 도취되어 종일 돌아다니다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캠핑파크로 가게 된 것은 10시가 넘어서였다. 적막한 사막임에도 캠핑장만은 불이 훹히 켜져 있었다. 근사한 저녁르 지어 먹고 나니 마음이 놓여서일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한 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은가. 다른 곳에서 보아 오던 달과는 분명히 달랐다. 너무나 가까이서 너무나 신비롭게 차디찬 정물이 되어 황홀하게 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낙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행 12명에 안내원 12명의 호사 끝에 우리가 당도한 곳은 가운데 우물이 있는 모래밭이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우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어린왕자의 말대로 뜨거운 모래바닥 속의 찬 우물물은 정말 신기했다.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장치도 신기했고 주변에서 땔감을 모아 그 물로 저녁을 짓고 간식거리 빵을 굽는 안내인들의 작업도 신기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사막의 저녁 노을이었다.

 

 

가시나무 덩굴 사이로 낙조가 비치는가 싶더니 그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일순에 밤이 왔다.

사막에는 모든 것이 빨랐다. 낮이 밤으로 바뀌는 것에서부터 낙조가 별자리로 되는 것은 물론, 화끈거리던 열사가 오싹한 한기로 바뀌는 대기의 변화 또한 순간이었다. 기온 차가 심하다는 선입관에 지레 겁을 먹은 우리는 저녁을 먹기가 바쁘게 추위에 대비할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모포를 마련한다. 모닥불을 피운다 야단들이었다. 그런데 그 절묘한 달빛이 비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곧이어 점점이 나타나는 사막의 별.

 

별과 가장 가가워진다는 가이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하늘이었다. 적도가 가가운 라지스탄의 밤하늘은 캘리표니아의 밤하늘과는 또 달랐다. 더욱 찬란했다. 달빛은 더욱 크고 밝았으며 별자리란 별자리는 모두 다 모인 것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서 떨어지는 별똥별로 밤하늘은 온통 수런거리는 듯했다. 달빛과 별빛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낙타의 방울 소리도 되새김질하는 소리도 맑고 청명했다.

 

저녁을 먹고 나자 현지인들은 할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추위를 잊기 위해서인지 공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함성을 지르고 모래밭을 내달리는 소리가 휘영청 달빛 속에 그림자처럼 광야에 퍼졌다. 신기하게도 그 소리는 평소 듣던 함성이 아니었다. 맑고 투명한 , 어쩌면 금속성 악기를 두드리는 듯한, 아니면 환청 같기도 한 소리가 퍼졌다. 사막에서는 빛뿐만 아니라 소리조차 순수해지는 모양이었다.

 

그 아름다운 밤을, 그러나 우리는 즐길 새도 없이 추위로 떨어야만 했다. 온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우선 누워야 된다는 생각박에 없었다. 아직도 온기가 남은 모래 위에다 그들이 주는 모포를 깔고 그 위에 또 저마다 가지고 온 배낭을 나란히 폈다.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도록 바싹 붙어 누울 수밖에 없었다. 다 함께 누워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릴 때 시골 외갓집 평상에 누워 보내던 여름방학 생각이나기도 하였다.

 

누군가 생텍쥐페리를 대신하여 야간 비행을 하고 있는지 불빛이 혜성처럼 날고 잇다. 사막에서는 자연광이든 인공광이든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순수하다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있는 그대로를 투명하게 굴절없이 통과시키고 있다. 달빛은 더욱 차갑게, 별빛은 더욱 영롱하게 순수한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달빛과 별빛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라스베이거사나 LA의 야경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도 사막의 도시이기 때문은 아닐가. 사막에 가야만 어린왕자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사막에는 어린이와 같은 순수의 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주와 나와의 완전한 일체감. 그래서 생텍쥐페리는 사막을 그토록 사랑했던 것일가.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고 햇다. 하지만 사막은 너무나 투명하여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가지도 투명해질 것 같다. 그래서 명상의 대가들은 모두 인도인이었던 걸까.

 

또다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그것이 내 마음의 별똥별이 되어 가슴으로 떨어진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던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른다. 밤 하늘의 기막힌 아름다움 때문인가. 순수에 대한 감격 때문인가. 나는 부서져 내리는 달빛 아래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별똥별을 먹고 또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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