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4월24
정민의 世設新語
을사사화 때 임형수
(林亨秀. 1504~1547)가 나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열 살이 못 된 아들에게 말했다. “글을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라.” ‘연려실기술’에 나온다.
후한 때 범방( 范滂137~169)은 만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인물이었다. 영제(靈帝)때 자청해서 형을 받으러 나가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네게 악을 행하라 권하고 싶구나. 하지만 악은 할 수가 없는 법. 그래서 네게 선을 권하려 한다만, 나는 악이나 행하지 않으련다. ” 씁쓸하다.
송나라 때 송첨(宋詹)도 유담(劉湛)을 섬기다가 당인()으로 몰려 잡혀 가면서 아우에게 말했다. “악을 서로 권하려니 악은 할 수가 없고, 선을 서로 권하려 하다 보니 오늘 이런 꼴을 보는구나.” 다맺힌 것이 있어서 한 말이다.
초나라 소왕(昭王)의 첩 조희(趙姬)가 시집가는 딸에게 당부했다. “조심해서 선은 행하지를 말아라. 공연히 남의 질시만 받게 된다.” “악하게 행동할까요?” “선도 하지 말랬는데, 하물며 악을 해서야 되겠느냐?” 명나라 때 사조제(謝肇제)의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나온다. 네 이야기에 모두 난세를 살아가는 슬픈 표정이 담겼다. 이들은 모두 심지가 굳었던 사람들인데도 그랬다.
옳고 그른 판단이야 누구나 한다. 하지만 세상길이 시비는 선악에 따르지 않고 뒤집히는 경우가 더 많다. 착한 일을 하면 질시를 받고 모함을 받아 해를 입는다. 악한 일을 거리낌 없이 해야 권세를 잡고 지위가 높아진다. 배운 대로 해서는 손해만 본다. 어찌할까? 아예 배우지를 말거나, 선은 고개 돌려 외면하고 악이나 행하지 않고 사는 것이 험한 세상에서 그럭저럭 제 몸을 지키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버스 정류장에서 담배꽁초 버린다고 20대 청년을 훈계한 60대 할머니가 그가 때린 벽돌에 맞아 숨졌다. 자식 사랑에 눈먼 부모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학교로 달려가 선생을 폭행한다. 욕을 보지 않고, 봉변을 면하려면 엔간한 일에는 못본 척 눈감고, 부화가 끓어도 눌러야 한다. 선의의 훈계가 앙갚음으롣 되돌아오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그런가?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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