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3.2.27
정민의 世設新語
조락공강(潮落空江)
당나라때 이정(李정)이 쓸쓸한 송강역(松江驛)물가에서 저물녘에 배를 대다가 시 한 수를 썼다.
“조각배에 외론 객이 늦도록 머뭇대니, 여뀌곷이 피어 있는 수역(水驛)의 가을일세. 세월에 놀라다가 이별마저 다한 뒤, 안개 물결 머무느니 고금의 근심일래. 구름낀 고향땅엔 산천이 저무는데, 조수 진 텅빈 강서 그물을 거두누나, 여기에 예쁜 아씨 옛 노래가 들려오니, 노 젓는 소리만이 채릉주(菜菱舟)로 흩어진다(片帆孤客晩夷猶,紅蓼化前水驛秋.歲月方驚離別盡烟波伋駐古今愁,雲陰故國山川暮,潮落空江網?收,還有吳娃舊歌曲,棹聲遙散采菱舟)
참으로 적막하고 쓸쓸한 쓸쓸한 광경이다. 조각배를 탄 나그네가 물가를 쉬 떠나지 못하는 것은 강가의 붉은 여뀌꽃 때문만은 아니다. 둘러보니 지나온 세월은 덧없고, 사랑하던 사람들은 다 떠났다. 산천은 자옥한 구름 속에 가뭇없이 저물고, 썰물 진 빈강에서 어부들은 말없이 낮에 쳐둔 그물을 거둔다. 환청인가 싶게 먼 데 노랫소리가 가냘프게 들린 것만 같다. 사공은 나를 빈강가에 내려놓고 찌꺽찌꺽 노를 저어 저문강 저편으로 사라진다.
청나라 때 김성탄(金聖嘆)이 ‘산천은 저무는데, 그물을 거둔다’고 한 5.6구를 읽고 이런 평을 남겼다. “하루가 끝난 뒤는 이와 같을 뿐이다. 일생이 끝난 뒤도 이와 같을 뿐이고, 한 시대가 끝난 뒤도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덕무(李德懋)는 김성탄의 평을 보고 또 평을 남겼다. “내가 이 말을 듣고 망연자실 드러누워 천장을 우러러보며 드넓은 흉금에 감탄하였다” “청비록(淸脾錄)‘에 나온다.
하루가 이렇게 가고, 한 인생이 이렇게 가고, 한 시대도 이렇게 물러나는 것이다.
목전의 일 앞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사생결단하던 다툼이 머쓱해진다. 좀전의 노랫가락은 환청이었을까? 그는 아주 먼 길을 돌아서 처음 자리에 다시 섰다. 하지만 그런가? 어둠이 곧 찾아들겠지만, 금세 새벽이 온다. 사공은 부지런히 노를 저어 물가에 다시 배를 댈 게고, 어부는 힘차게 새 그물을 칠 것이다.
고운 아가씨는 간밤의 슬픈 가락을 잊고 새 단장에 분주하리라. 이런 반복 속에서 장강대하(長江大河)와 같이 하루가, 일생이, 한 시대가 흘러왔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닫히고 열리는 한 시대를 본다.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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