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이 지났다/김언희-
중절모에 새똥이 떨어진 지 5분이 지났다
당신이 벌떡 일어선 지 5분이 지났다
어머니가 혀를 못 놀린 지 5분이 지났다
옛날이 흘러간 지 5분이 지났다
죽은 잎을 따버린 지 5분이 지났다
하느님을 믿기 시작한 지 5분이 지났다
내가 새사람이 된 지 5분이 지났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지 5분이 지났다
내가 이 꿈에 등장한 지 5분이 지났다
<감상>
5분이란 무엇인가?
내가 너를 만난 지 5분이 지났다
달이 떠오른 지 5분이 지났다
새소리가 들린 지 5분이 지났다
이 5분은 기가 막힌 시간이 아닐까?
참으로 소중한, 터미널에 다다른 환자가 찾던
그 5분, 그 막막한 시간, 그 황홀한 시간,
아무도 되찾아주지 못할 시간, 그 절박한 시간,
그 5분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보내고 마는구나
아무 생각 없이 아무 연민도 연애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를 또 하루를 또 한평생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마는구나
그 5분처럼 소중한 그대를 그대의 미소를 그대의 악수를
그저 그렇게 당연하게 그냥 보내는구나
그 따스한 커피잔의 추억을 그 쓸쓸한 지평선의 노을을
그 눈부신 태양 아래 빛나던 그 숨 막히는 자맥질을
죽은 잎을 따버린 지 5분이 지났다 어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찾던
그 5분, 하느님을 찾던 그 5분, 5분이 그렇게 가는구나
또 그 5분이 그렇게 오는구나.
또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고 또 겨울이 올 것이고
5분처럼 그 하루처럼 그 평생처럼...
5분을 후회하며 푸념하며 왜 지지리도 못난 나를 탓하는 것일까?
그 5분을 잊지 못하는 그 5분을 차라리 버리지 못하는 나를
그 찬란한 꽃자리 '지금'을 꽉 움켜쥐지 못하는 나를?
(5분은 또 'S'분을 닮았구나. 에로틱한 그 숨 막히는 순간을
'5'자 상징으로 몰래 숨겨 놓은 그 위트가 멋지지 않으냐?)
-나병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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