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하상만-
콩자반을 다 건져 먹은 반찬통을
꺼내 놓는다. 반찬통에는 아직
간장이 남아 있다.
외로울 때 간장을 먹으면 견딜 만하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내가 일으키려 할 때
할머니는 간장을 물에 풀어오라고 하였다
나는 들어서 알고 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혼자 먹던 것은 간장이었었다는 것을.
방에서 남편과 시어머니가 한 그릇의 고봉밥을
나누어 먹고 있을 때
부엌에서 할머니는 외로웠다고 했다.
물에 풀어진 간장은 뱃속을 좀 따뜻하게 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운을 주었다.
할머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달라고 한 음식은
바로 간장.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는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었다.
수년째 자식들은 찾아오지 않던 그 방
한 구석엔 검은 얼룩을 가진 그릇이 놓여 있었다.
내가 간장을 가지러 간 사이 할머니는
영혼을 놓아버렸다. 물에 떨어진 간장 한 방울이
물속으로 아스라이 번져 가듯
집안은 잠시 검은 빛깔로 변했다.
비로소 나는 할머니의 영혼이 간장 빛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할머니의 손자이므로 간장이 입에 맞았다.
혼자 식사를 해야 했으므로
나는 간장만 남은 반찬통을 꺼내 놓았다.
<감상>
나도 가끔 숟가락으로 간장(죽염으로 담근)을 퍼 먹을 때가 있다. 하상만 시인처럼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아니고, 감
기가 올 것 같다거나 목이 부어오를 기미가 보일 때이다. 간장을 먹으면 몸이 따뜻해지거니와 정신 또한 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간장을 무슨 약처럼 먹느냐고?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 좋은 음식은 약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질 않았던가. 간장
은 ‘견딤’의 미학이다. 오래 묵을수록 그 맛이 깊고 맑으니, 우리가 그보다 사려 깊지 못하고 영혼이 맑지 못함을 당연히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의 맛, 오늘은 그 맑고 외로운 간장 맛을 약지에 묻혀 혀끝에 대고 싶은 날
이다. 한 잔 술과 함께.
-박후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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