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곡돌사신<曲突徙薪>

다림영 2011. 3. 3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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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일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곡돌사신<曲突徙薪>

지나던 사람이 주인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땍의 굴뚝이 너무 곧게 뻗었군요. 게다가 곁에 땔감까지 쌓아두어 화재가 염려됩니다. 굴뚝을 지금보다 조금 굽히시고, 땔감은 떨어진 곳으로 치우십시오." 주인은 네 걱정이나 잘하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얼마 안 있어 정말 불이 났다. 다행히 이웃들이 달려와서 불을 껐다. 주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를 잡아 이웃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불끄다 다친 사람을 가장 윗자리로 모셨다. 막상 앞서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치우라고 충고한 사람은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앞서 그 사람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잔치 비용 들일 것도 없이 아무 걱정이 없었겠지요. 이제 공을 논하면서 바른말로 충고해준 사람은 아무 보람도 없고, 불 끄다가 이마를 다친 사람만 상객<上客>대접을 받습니다그려." 곡돌사신<曲突徙薪>,즉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긴다는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흔히 예고 없는 재난을 미연에 대비하는 선견지명이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뜻으로 쓴다. "한서<漢書>" "곽광전<곽光傳>'에 나온다.

 

일본의 화산폭발에 이은 쓰나미 참사는 원전 사태의 악화로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원전관리의 책임을 맡은 도쿄전력의 빈말과 낙관이 사태를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켰다는 보도다. 상상을 초월하는 쓰나미 앞에서 무서우리만치 침착하던 일본 국민들도 이 미증유의 사태앞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것은 남의 집 일인가? 우리 원전은 안심해도 좋은가? 더욱이 우리는 지진 대신 전쟁의 위협이 상존한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미군의 B-29폭격으로 도쿄대공습이 이뤄졌다. 불과 3시간의 폭격에 10만면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재앙은 쓰나미 정도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재난 대비 시스템은 이런 비상시에도 정상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까? 곁에 불기운을 그대로 뿜는 곧은 굴뚝과 땔감 더미를 쌓아놓고도 근거없는 낙관, 설마 하는 방심을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후쿠시마 원전에 끝까지 남은 50명의 결사대에 대한 경의에 앞서, 미연에 극단적 재난에 대비하는 선견지명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소 잡아 잔치할 생각말고,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기자.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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