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3월 .10일 목요일
앙코르 내 인생
해양학자에서 심리상담사가 된 이광우<74>씨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상처 입은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미국작가 에밀리 디킨슨의 시 'If I can<만약 내가>'에 나오는 이 시구<詩句>는 일흔이 넘어 내가 인생 신조로 삼게 된 말이다. 마음이 아픈 이들의 상처받은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안식처를 내주는 일, 그게 늘그막 인생의 모퉁이를 돌아서 내가 마주한 천직<天職>이다. 나는 일흔넷의 심리상담사다. 흰 머리칼이 젊음을 잠식한 나이지만 상담할 때만은 청년 못지 않은 열정을 불사른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이다.
30여년 넘게 내 이름 앞엔 '해양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과거의 나를 알던 이들은 지금의 심리상담사라는 호칭에 의아해하고, 지금의 나를 아는 이들은 과거의 해양학자라는 타이틀에 놀란다. 나는 1961년부터 1976년가지 미국에서 해양 오염을 연구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원과 한양대 해양학과 교수로 2002년까지 일했다.
자연과학과 함게한 내 인생의 1막은 외로운 학자의 길이었다. 전공이 해양<海洋>, 즉 바다이다 보니 나의 연구실은 넓디넓은 바다였다. 해양 오염도와 수질을 측정하기 위해 탐사선에 올라 오대양을 누볐다. 망망대햐, 그 대자연을 대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되기 마련이다. 선상의 갑판 위에서 나는 거대한 자연 속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 우리네 생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모자람 없고 충만한 인생 1막을 살았지만 막상 정년이 다가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30여년간 해온 마라톤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섰다. 아직 다 채우지 못한 지적 욕구를 채워줄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25년 전 즈음 중학생이던 아들이 식탁위에서 불숙 던진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아빠, 아빠가 말을 걸면 말 못하는 벙어리도 말을 할 것 같아." 아이들과 조곤조곤 얘기하기 좋아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 앞에서 장담 맞추며 세상 얘기하는 모습이 아들 눈에 그렇게 비쳤던 모양이었다. 20여년 전 동료 미국 과학자 의 집에 갔다가 고집불통 아이 때문에 속앓이하는 그의 아내에게 아이를 다독이는 법을 가르쳐줬던 기억도 떠올랐다. 소아과 의사였던 그의 아내는 내 충고를 따라 했더니 아이가 몰라보게 바뀌었다며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말 없는 사람, 고통스러워 말과 담을 쌓은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게 도와주는 일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직업을 알아봤더니 심리상담사라는 게 있었다. 고심 끝에 퇴직후 2년 만인 2004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의 상담 전문과정에 입학했다.
나이 67세, 최고령 학생이었다. 게다가 전직 교수인 학생, 가르치는 입장도, 배우는 입장도 편치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당 교수는 나의 경험을 존중했고, 나 역시 새로운 분야에서 만난 스승을 존경했다. 20~30대읮 ㅓㄻ은 동기생들 사이에 섞여 초등학교에 현장 실습도 나갔다.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 수 있다면 더 바랄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뒤안길에서 새로 접한 학문이 그렇게 소중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새벽을 꼴딱 새우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2005년 상담 고급과정을 수료하고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받았다. 그리고 만 일흔살 생일이던 2007년 4월 20일 서울 역삼동의 친구빌딩 한구석에 내 이름 석자를 박아넣은 심리상담센터를 열었다.
부모에 대한 울분을 못 견뎌 부모의 재산을 탕진해 버린 청년, 회사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직장인등 다양한 이들이 내 심리상담센터를 찾는다. 일부는 돈을 받지만 무료 상담도 꽤 된다. 내가 가진 경험을 나누는 사회 환원으로 생각해서다. 나는 충고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심리상담에 필요한 덕목인 '기다리는 여유'는 인생의 연륜에서 오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직업은 어쩌면 노년에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긍정적인 사고가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는 '행복 심리학'에 웃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웃음학'을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젊은 날 자연과학을 대하던 그 자세 그대로 진지하게 심리학을 공부한다. 적어도 한 주에 3권이상의 심리학 서적을 읽고 심리학학회도 자주 나간다.
행복을 말하면서 내 삶도 더 행복해졌다. 아내는 내가 훨씬 다정한 남편이 되었다고 대만족이다. 어느덧 30년 넘게 입에 달고 살았던 '<수질 >오연'이라는 단어는 '웃음' '행복'이라는 단어로 치환됐다.
첼로의 거장 파블로카잘스는 아흔이 넘어서도 하루에 9시간씩 첼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이유를 묻는 기자들 앞에서 카잘스는 말했다. "나는 지금도 매일 발전해 가고 있는 것 같소 <I think I'm still im-proving everyday>. " 일흔넷의 나 역시 지금도 날마다 조금씩 발전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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