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멸치 한 줌 훔치고 배운 인생

다림영 2010. 7. 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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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해안 거제도 바닷가에서 자랐다. 우리 동네 해변에는 초승달 같은 해안선을 따라 길고 넓게 자갈밭이 펼쳐 있는데, 봄.여름.가을에는 온통 멸치를 말리는 막장이 된다. 큰 가마솥에 바닷물과 굵은 소금을 넗고 장작불로 펄펄 끓인 다음, 바다에서 잡아온 멸치를 집어넣어 숨을 죽인다.

 

 

그런 후 삶은 멸치를 납작한 둥근 소쿠리로 적당히 떠서 열을 식힌다. 햇살이 퍼지는 아침나절이면 인부들이 자갈밭 위에 짚으로 짠 얇은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소쿠리에 담긴 멸치를 털어 말린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은빛 멸치가 자갈 위에 넓게 깔려 있는 모습은 푸른 바다와 하늘, 흰 구름과 어울려 한여름 어촌 마을의 아늑한 해변 풍경을 연출한다.

 

 

오후 해가 기울면서 막장에는 아저씨들이 아침에 널었던 멸치를 거두는 작업이 시작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애들은 이때를 기다렸다가 대바구니를 들고 멸치를 주우러 막장으로 달려간다. 그러곤 멸치를 터는 아저시들 뒤에 갈까마귀 모이듯이 바짝 다가붙는다. 그들이 잘못 털어 자갈밭에 떨어뜨리는 멸치를 주워담기 위해서다.

 

 

어느날 나는 늦게 멸치 막장에 도착한 탓으로 소득이 영 시원치 못했다. 조바심이 생겨 작업이 끝나갈 무렵 아저씨의 눈을 피해 한 줌 슬쩍했는데 그만 저쪽에 서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아주머니는 내게 다가와 호통을 쳤고 멸치 담은 바구니까지 빼앗으며 다시는 이 막장에 오지 말라고 했다.

 

 

동네 친구들이랑 멸치 터는 아저씨들이 보는 앞에서 나는 톡톡히 창피를 당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어도 다른 애들한테는 꾸지람 정도에 그치고 바구닐 빼앗진 않았는데 나에게만은 유독 심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죄의식과 수치심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바닷가에 앉아 풀이 죽어 먼 수평선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멸치막장이 파한 뒤에도 집에 돌아가기가 두려워 어둑해서야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빈손으로 늦게 들어오는 나를 힐끗 보시고, 저녁 먹으라하곤 밖으로 휑하니 나가셨다.

 

 

 

나는 일찍이 할머니 밑에서 컸다. 애지중지하시던 아들을 6.25전쟁에 잃고 손자 하나를 키우는 할머니이 정성은 대단했다. 둥근달이 떠오르면 정화수를 떠놓고 조상께 비는 할머니의 기도는 처음에는 자식의 '무사귀가'였다.  하지만 전사통지서를 받고부터는 죽은아들에게 "네 자식 병 없이 무탈하게 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애절하게 빌고, 끝내 몰래 우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난 학교 공부를 잘했고, 또 열심히 했다.

 

 

내가 할머니를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손자가 대견스럽다며 동네방네 자랑하는게 할머니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손자가 남의 멸치를 훔치다 들켜 야단을 맞았다는 사실을 할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낙담하실까. 점점 걱정이 더해갔다. 할머니의 꾸중보다 당신이 가질 실망이 더 두려웠다. 밤이 이슥해서야 할머니가 오셨다. 둥근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할머니는 옆집 아이한테 그 일을 들었다며 "남의 물건에 몰래 손대는 것은 도둑질이야. 공부보다는 정직해야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야단칠 줄 알앗는데 할머님은 의외로 조용조용 말씀을 이어가셨다. "나는 네가 저 달처럼 밝고 맑게 커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네 아버지에게 빌고 있다. 앞으로 절대 그런 짓 하지 말아라" 그러곤 한참이나 달을 보고 합장을 하시다가 "내일 아침 멸치 막장 주인아주머니한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오너라"고 하셨다.

 

 

고요한 달밤에 앞 논 어디선가 큰 개구리 우는 소리가 "꺼억 꺼억" 들릴 뿐 온 동네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날 밤 할머니는 쉽게 잠이 안 오는지 몇 번식 돌아누우시며 간간이 한숨을 쉬셨다.

 

 

이튿날 책보를 어개에 질끈 동여매고 멸치 막장 주인집으로 향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저어, 어제 멸치 훔친 것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모깃소리만 했지만 또렷이 말씀 드리고 고개를 숙였다. "괜찮다. 학교 늦겠다. 빨리 가거라." 뜻밖에도 아주머니의 말씀은 부드러웠다. "너는 다른애와 달라서 행동을 잘못하면 남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고, 할머니까지 욕먹이게 된다. 더 조심하라고 일부러 심하게 야단을 쳤다. 섭섭히 여기지 마라." 그러면서 어제 빼앗아간 멸치 바구니를  돌려주셨는데 , 그 속에는 멸치가 꾹국 눌려 가득 담겨 있었다.

 

 

 

다음날부터 난 다시 멸치를 주우러 다녔다. 이런 인연으로 아주머니는 가끔 멸치를 보내주셨고, 할머니는 고추나 고구마로 답례를 하곤 했다. 그 후 설날이면 그 집에 세배를 다녔다. 세뱃돈을 찔러 주며 공부 잘하라고 어개를 ㅆ,다듬어 주시는 아주머니의 손이 어머니 손길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온 후에도 방학 때가 되면 그 댁에 인사차 들렀고, 그런 날이면 으레 좋은 멸치 두세 포대를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걸 팔아 학비에 보태 쓰라는 아주머니의 특별한 배려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그 아주머니 나이쯤인 육순을 넘었지만, 어린 시절 추상같은 질책으로 나의 인생정도正道에 초석을 놓아주신 그 멸치 막장 아주머니를 결코 잊어 본적이 없다.

 

 

언제나 이때쯤 내 여름 밥상에는 멸치가 있어야 한다. 고추장에 통째로 찍어 먹는 고소하고 짭짤한 맛은 고향의 맛이요, 나에게 아득한 추억을 연상케 해주는 애틋한 맛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 때문인지 작은 멸치 한 마리도 소홀히 하지 못하는 버릇이 몸에 배어, 심지어 국물을 우리고 난 뒤에 버리는 삶은 멸치까지도 고추장에 무쳐 먹자고 한다. 집사람이 이런 나더러 "쫀쫀하다"고 핀잔을 놓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조선일보7/15일자 - 이종기/포스코 퇴직. 신라 문화유산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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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만 학교에서만 배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온통 진리의 절절한 배움터다.

삶의 격동에 휩쓸리고 일어설때마다 거듭날 수 있다.

오늘도 세상의 가르침에 한걸음 내 디딛을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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