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존재인 인간이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쇠약이 '늙음'이라는 것이라면 심신의 쇠약을 그대로 긍정하는 사상을 취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모색하고 있습니다.
..
늙음이란 시드는 것이고 늙음의 아름다움은 시들어버린 아름다움에 있다고 간주해 버리는 풍조가 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일본어의 '가레루'에는 "인격이나 예술에 겉치레나 군더더기가 없어지고 원숙미나 차분함을 가지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을 정도이니까요.
..
인간은 누구나 얼마간 허영심과 자기과시욕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성性적 능력은 곧바로 생명력 자체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쇠약함과 약함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편입니다. 더욱이 쇠약함과 약함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편입니다. 더욱이 노쇠의 어떤 형태에는 생명력의 부분화. 단편화가 관념의 고착화와 연결된 결과에 따른 성적 욕망의 증진에 있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
치과 의사인 친구에게 앞으로는 틀니가 실버산없의 황금시장이 되겠네 하고 말하자, 그는 다소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왜 그런지 알아? 인간이 치아의 수명보다 오래 살기 때문이야."
그렇지만 저는 늙음의 문제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는 친구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있잖아, 인간은 그리 간단히 죽지는 않는다구.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서히 죽는 거라구."
이렇게 말하면 같은 세대인 친구들, 특히 남자들은 대부분 화들짝 놀라면서 당혹스러워하다가는 곧 당황해 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지금부터 시간이 흐른다음 할망구가 되었을 때를 상상하다니 여자란 도깨비같이 끈질긴 동물이야 하고 반격을 가합니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자신만은 젊음을 유지한 채 어느날 '명예로운 전사'를 할 것이라고 추호의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저는 늘 고꾸라질 듯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었습니다. 고꾸라질 듯한 '앞'이 있었다고 말해야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저는 '지금여기'에 언제까지나 서 있으며 '지금 여기'를 떠나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저는 풍경과 등신대等身大가 됩니다. 제 속에서 바람이 불고 모래폭풍이 지나가고 나무들 사이로 솓아지는 햇살이 반짝입니다.
늙는 다는 것은 제 속의 풍경이 넓어지는 것이네요. 아마 북극까지. 그래서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도 됩니다.
-------------
이책은 여성학자와 남성철학자의 왕복 서간집이다. 편집기획자가 두 학자에게 의뢰하여 2년에 걸쳐 잡지에 연재되었던 공개편지글이다.
제목이 각별해서 주저없이 빌렸다.
큰 감동적인 얘기는 별반 없었지만 미래....그러니까 내가 노인이 될 그날의 막연한 불안감으로 그 때를 위해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를 모시고 있으며 또한 아이셋 모두를 대학까지 무사히 마쳐줄 수 있을지 ㅣ모든 것이 버겁기만 한 일상이다. 그런 와중 노후를 위해 어떤 대비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금전적인>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찌 그 긴시간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지 가히 염려스럽기만 하고 평균수명이 너무나도 길어진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다.
가끔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인 내게 시어머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제복은 다 제가 타고 난다. 살기 마련이다'..
한세상 풍파를 겪으며 살아오신 분의 말씀이지만 난 그렇게 무책임한 말씀은 거절하고 싶다. 지금의 착실한 생활태도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주는 것이므로 안이한 생각으로 구태의연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친구하고 싶지 않은 것이 진심이다.
그러나 먼 미래의 일을 가지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날들의 환함을 위해 마음의 풍경이 넓어지도록 애를 써야 할 것이다. 또한 건강한 몸이어야 아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므로 모든 것은 건강 다음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먹는 것에 대한 욕심 또한 과감히 버려야 하리라.
한가지 더 지금 이 순간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므로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는 것에 최선을 다하기도 하면서..
..
쉽지 않은 과제이다.
그러나 이렇게 건강하게 지금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책 만권을 읽으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명 수필 2/법정외 지음/손광성.맹난자. 김종완 엮음 (0) | 2010.01.04 |
---|---|
달팽이/손광성 수필집 (0) | 2010.01.02 |
유쾌한 철학, 소소한 일상에게 말을 걸다/황상윤 (0) | 2009.12.26 |
사막에 숲이 있다/이미애 (0) | 2009.12.24 |
문제수필/한국비평문학회 (0) | 2009.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