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자식을 향한 작은 바람

다림영 2024. 6. 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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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 급했던 것일까. 작업절차를 채 설명하기도 전에 유족들은 우르르 안방으로 몰려갔다. 장롱문을 열어젖혀 이불 사이를 뒤지고, 서랍을 빼내어 바닥에 뒤엎었다. 남자와 여자 총 다섯 명, 서로를 부른 ㄴ호칭으로 보아 고인의 딸과 사위, 아들인 듯했다. 

 

무슨 유서를 저리 요란하게 찾는 건가 했는데 집문서 운운하는 소리가 들렸다. "대체 어디다 숨겨놓은거야?"

"금반지랑 금두꺼비도 있다더니 없는데?"

안방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가족들은 나머지 방과 거실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달해줄 것을, 가족들은 집 안을 뒤죽박죽으로 헤집으며 청소만 어렵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무리 의로인이고 소중한 고객이지만 저런 사람들을 위해 청소를 해야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뒤 박으로 나왔다. 지는듯한 여름이라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흘렀다. 그렇게 삼십분이 넘게 지났을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웃들이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작업을 마쳐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마침 가족들이 나오는 참이었다. 원하는 것을 못찾았는지 얼굴들에 짜증이 서려 있었다. 첫째 사위인 듯한 이가 물건이 나오면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이었다. 앨범, 휴대전화, 신분증, 각종 서류, 통장, 현금 , 귀중품 등은 요청하지 않아도 확실히 전달한다. 

 

가족들이 어지럽힌 통에 집 안은 더욱 정신이 없었다, 구역을 나눠 인원을 배정하고 유품을 분류하기 시작했디. 하지만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나오지 않았다. 

 

유품을 담은 박스들을 차량에 실으라고 지시한 후, 정리중에 나온 앨범과 사진 액자를 닦았다. 전해주기 위해 나가보니 아파트 입구쪽에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다른 물건은 없고 이것만 나왔습니다."

 

딸이 실망한 얼굴로 액자와 앨범을 받아들었다. 순간, 아들이 그것을 냅다 빼앗아들더니 한쪽에 세워두었던 우리 차량적재함으로 집어던졌다. 

 

"냄새도 심한 걸 뭐하러 가지고 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액자 유리가 개졌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꺼림칙하다면 사진만 빼서 간직해도 될 것을. 

 

나는 적재함으로 뛰어올라가 액자를 집어들었다. 

"사진만 빼내면 괜찮을 겁니다."

 

그러고는 사진을 빼기 위해 액자 뒷면을 떼어냈다. 그 순간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현금과 봉투였다. 액자 안의 스티로폼 중간 부분을 잘라내고 넣어둔 것이었다. 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적재함 바닥으로 쏠렸다. 아들이  뛰어왔다. 돈과 볻투를 주워들고 막 건네려는데 아들이 휙 낚아채갔다. 

 

가족들이 모두 다가오고, 아들은 돈을 세기 시작햇다. 오백만원이라고 했다. 봉투에는 집문서가 들어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이것만이라도 간직하시죠."

 

아들은 귀찮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그에게는 집문서와 현금만이 중요했다. 

그돈은 장례비용이었으리라. 죽는 순간까지 남겨진 자식들을 걱정하는 것이 부모다. 부모의 사진을 버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현금과 집문서를 액자에 넣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고인의 사진을 더도 덜도 아닌 쓰레기 취급했다. 아버지가 홀로 살다 돌아가시고 스무날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는데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았다. 고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것도 자식이 아닌 옆집 할아버지였다. 

 

이런 경우 가족들은 조금 더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애초에 죽음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며 가슴 아파한다. 그런 가족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과연 위로가 될 까  회의하면서도 위로의 말을 건네곤 했다. 

 

그러나 그날은 가슴 아파하는 가족도 없었고 그러니 위로의 말을 건넬 필요도 없었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혼이 있어서 고인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면 그 심정이 어떨 것인가.

 

보는 이의 마음이야 어떻든 원하는 것을 얻은 가족들은 이제 볼일이 끝났다는 듯 총총히 사라졌다. 나만이 슬쓸함을 감추지 못한채 그 자리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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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정리사가 더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책[떠난후에 남겨진 것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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