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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말

다림영 2023. 7. 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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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영혼이라도 깃든 것인가. 일말의 주저 없이 어린 댓글을 일필휘지로 남길 수 있다니...'

블로그나 SNS에 달리는 댓글을 읽다가 화들짝 놀랄 때가 있다. 난 모니터 뒤에서 악플을 일삼는 사람들의 손끝에서 태어난 문장이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돌 때마다 적잖이 슬퍼진다.

 

상대의 단점만을 발견하기 위해 몸부림 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내면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방중하는 것인지 모른다. 슬픈일이다. 남을 칭찬할 줄 모르면서 칭찬만 받으려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존중만 받으려 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만 받으려 하는 건 , 얼마나 애처로운 일인가. 

 

악플과 태생적 배경이 유사한 단어가 잇으니, 바로 뒷담화다. 뒷담화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당구 용어 '뒷다마'에서 온 비속어라는 설이 있고 '담화談話'라는 단어에 우리말 '뒤'가 합해진 합성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뒷담화'라고 검색어를 입력해도 자료가 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상에서는 널리 사용하는 단어지만 아직 국어사전에는 정식으로 등재되지 않았다. 2017년 4월 2일 기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중 하나가 바로 뒷담화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대인관계에서 누적된 불만을 분출하기 위해 우리는 종종 특정인을 단죄하듯 험담을 늘어놓는다.

 

담화를 맨 처음 생산한 일차적 가해자는 물론 침을 튀기며 맞장구를 치는 동조자까지도, 비루한 언어를 입에 장착해 쏘아대는 순간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남을 헐뜯는 말은 대개 "특별히 너한테만 털어놓는건데" 혹은 "웬만하면 내가 이런 얘기 안 하는데" 하는 말과 함께  세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런 험담이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뒷담화는 명멸하지 않는다.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다. 

 

뒷담화는 누군가의 입에서 입을 통해 돌고 돌다가 소문내기 좋아하는 조직 내 빅마우스의 귀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의 입술과 너덜너덜 한 혀로 빠르게 스며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험담 피해자의 귀로 흘러들어간다. 

뒷담화와 뒷담화가 뒤얽혀 빚어지는 소음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모든 힘은 밖으로 향하는 동시에 안으로도 작용하는 밤이다. 말의 힘도 그렇다. 말과 문장이  지닌 무게와 힘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허다하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해엄쳐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되돌아온다. 

 

일본의 심리학자 시부야 쇼조에 따르면 , 타인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 사람은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상대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상대방을 뒷담화로 내리찍어 자기 수준으로 격하시켜야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말을 의미하는 한자 '언言'에는 묘한 뜻이 숨어 있다. 두번二 생각한 다음 천천히 입口을 열어야 비로소 말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품격이 있듯 말에는 나름의 품격이 있다. 그게 바로 언품이다. 

 

뒷담화가 우리 삶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는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뒷담화는 화살처럼 무서운 속도로 사람의 입을 옮겨 다니기가 언젠가 표적을 바꿔,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혀와 가슴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그땐 뒤늦게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다. 뒷담화의 화살촉이 훨씬 더 날카로운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 [말의 품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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