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원자에서 지구의 모든 원소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음의 한 가지 움직임에서 존재의 모든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에서 무한한 대양의 모든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한 가지 모습에서 삶의 모든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칼릴 지브란- 인간은 가차없이 순환 속에 내던져져 있다. 우리의 마음은 거북이 같은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만들어내지만, 이 껍질은 영혼을 억누른다. 결국 우리는 껍질에서 벗어날 때가지 계속해서 껍질을 깨버릴 방법들을 고안해낸다. 껍질을 만들었다가는 부시고, 얇게 다시 만들었다가는 부셔버린다. 이렇게 만들고 부수는 사이에서만 우리의 마음은 완전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갇혔다 해방되는 사이에서만 사랑이 우리를 관통한다. 그러나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이런 순환에 공모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은 이끼를 자라게 하고, 은은 변색되며, 개념이 커지면 마음은 무감각해진다. 폭풍우는 이끼를 제거하고, 변색된 부분은 무언가에 긁히면 없어지며, 위기가 닥치면 마음의 표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시간의 축적과 침식 속에서 우리는 변화한다. 하지만 똑같다. 바람에 모래가 둔덕을 이루면, 조수가 이 둔덕을 무너뜨린다. 마찬가지로 생의 초반기가 우리를 가득 채우면 , 후반기에는 소리없이 부드럽게 침수된다.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막과 이후에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침식을 견뎌낼 뿐이다. 물론 막과 침식의 춤은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다. 춤은 우리의 생각과 느낌, 이해, 존재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흐려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하는가? 얼마나 쉽게 영혼의 만성적인 건망증에 빠져 관찰과 분석 속으로 표류해 들어가 참여하고 경험하기를 멈추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믿기지 않게 삶의 그림자에만 익숙해진 모습으로 삶의 느낌도 망각하고 있다가 눈 뜨는가? 우리는 삶의 그림자들을 당혹스런 모양과 미묘한 색조까지 하나하나 아주 분명하게 본다. 하지만 삶을 느끼지는 못한다. 대지가 나무들을 키우듯 마음은 이렇게 생각과 말들을 키운다. 나무들이 너무 많으면 더 이상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말과 생각들을 잘라내야 한다. 물론 도끼는 침묵이 될 것이다. 실제로 , 생기는 경이를 지속시키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신을 진정으로 드러내는 순간을 늘리는 것, 즉 대지의 모든 원소와 대양의 모든 비밀이 우리 안에서 기다리는 삶의 모습을 움직일 때까지 고요하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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